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764 각주, 화랑세기를 피해가는 한 방법 나는 물건 감정과 전문가는 다르다고 본다. 미술사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예컨대 도자기가 있다. 나는 도자기 감정을 잘 한다 해서 그 사람이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로 보지는 않는다.이 논리대로라면 가장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는 그 진위를 감정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사동 같은 데서 일하는 골동품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골동품 취급하는 일과 도자기를 연구하는 일은 다른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연구자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으니, 무엇인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단안해야 할 때는 서슴없이 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감정일지라도 말이다. "1989년 부산에서 발견된 이른바 화랑세기에는 김흠돌 모반의 전말이 확인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이.. 2024. 2. 25. 파르테논 마블스, 그 운명을 예고하는 장기 대여 나는 그 반환 방식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파르테논 마블스 Parthenon Marbles, 일명 엘긴 마블스 Elgin Marbles가 종국에는 결국 영구대여 방식으로 반환될 것이라 예상했거니와, 지금은 그리스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방식으로 결국은 낙착하고 말리라 했지만 그것을 전조하는 움직임이 근자 실제로 영국 쪽에서 있었으니, 브리티시 뮤지엄the British Museum 과 같은 런던 기반 공예 성향이 강한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Victoria and Albert Museum (V&A)이 실제로 이 방식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 가나 Ghana에서 유래한 금은 공예품 32점을 장기대여했다. 이들 유물은 19세기 이른바 앵글로-아샨티 전쟁 Anglo-Ashanti Wars 기간에 약탈된 것들로 .. 2024. 2. 25. 간양록과 해동제국기 해동제국기를 쓴 신숙주 선생이야 당대의 수재로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힐 만한 선비이므로 두 말 할 것도 없지만, 간양록을 쓴 강항 선생도 당대의 문과 급제자로 당시 조선의 일류 문사라 할 수 있겠다. 이 두 사람이 쓴 일본에 대한 글, 해동제국기와 간양록은 작자의 지적 수준에 걸맞게 적혀 있는 내용이 단순한 당대의 전문을 모아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지금 봐도 굉장히 정확한 내용이 적혀 있다. 시바료타로는 신숙주 선생의 해동제국기가 매우 소략하다고 비판했다던데 당대 일본이 조선을 그럼 그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실로 이 책들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 중 최고수준이던 두 양반의 지적 수준을 잘 보여주는 역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신숙주 선생은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 2024. 2. 25. 신동훈: 인더스문명 관련 논문 총 서지 목록 https://shindonghoon.tistory.com/39 신동훈: 인더스문명 관련 논문 총 서지 목록다음은 필자가 2010년대 10년 간 인도의 인더스문명 유적지에서 수행한 연구에 대한 학술보고-대중매체 등 총 서지목록이다. 영어논문 E2020-2. Lee WJ, Shinde V, Kim YJ, Woo EJ, Jadhav N, Waghmare P, Yadav Y, Munshshindonghoon.tistory.com 위 링크는, 필자가 2010년대 약 10년간 인도에서 작업했던 인더스 문명 관련 연구의 학술보고 및 대중매체 소개 등 총 서지 목록이다. 의욕 하나로 진행했던, 참으로 힘든 작업이었는데 무사히 학술적 업적으로 남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다. 덕분에 많은 인도의 벗들을 얻게 되었지만.. 2024. 2. 25. [귀주대첩] (14) 또 하나의 제국, 승리가 초래한 변화 귀주대첩이라는 고려의 완승, 거란의 참패로 끝난 제3차 고려거란전쟁은 잦은 전쟁과 아슬아슬한 평화로 점철한 두 왕조 관계를 재편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질서 또한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로부터 거란이 망하기까지 100년간 이른바 평화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거란의 팽창도 이 전쟁과 더불어 끝이 났다. 정복왕조 거란이 정복을 멈췄다는 것은 현상 유지를 의미하며, 그것은 곧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위대한 팡파르였다. 물론 크고 작은 충돌은 없지 않았고, 거란 내부 또한 이런저런 반란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지만, 종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위대한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이 평화의 시대는 고려가 피로써 이룩한 것이었다. 거란은 이 참패를 숨기고자 하고 분식하려 했지만,.. 2024. 2. 25. 한강 용산방수제와 한강교, 을축년대홍수의 유산 한강 방수제와 한강교 준공 한강은 해마다 그 연안에 피해를 입힌 바가 많은 대하천 중 하나로, 특히 경성에 근접한 관계상 일찍이 그 개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25년(大正 14)에는 미증유의 홍수로 용산·뚝섬纛島·영등포 등 연안의 피해가 실로 막심했다. 그리하여 1926년(大正15) 이후 3개년 계속사업으로서 220만 원의 예산으로 용산의 방수제防水堤, 1927년(昭和 2) 이후 120만 원의 공사비로 한강교漢江橋의 가설 공사에 착수했다. 1929년(昭和 4)에 둘 다 준공되어 9월 18일 낙성식과 도교식渡橋式을 거행하여, 경성 교외에 훌륭한 경관을 더하게 되었다. 방수제는 신·구新舊 용산을 둘러싼 것으로 총연장 8,000m, 한강교는 총연장 441.6m, 유효 폭 9.1m에 달하고 있다. [636].. 2024. 2. 24. 이전 1 ··· 1884 1885 1886 1887 1888 1889 1890 ··· 429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