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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ns cooking early celadon in Korea discovered A thousand years ago, a kiln that used to bake early celadon on the Korean Peninsula was excavated in Haenam-gun, Jeollanam-do, located at the end of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The kiln site in Hwawon-myeon, Haenam-gun has beem known as a large-scale production facility that produced celadon in the early Goryeo Dynasty. Here, 90 kiln sites have been discovered in 59 locations.. 2020. 11. 11.
"부석사 무량수전은 금당 아닌 강당" *** 아래는 부석사성보박물관 근무하다 지금은 송광사성보박물관으로 옮긴 김태형 선생 2016. 11월 11일 그의 페이스북 계정 포스팅이다. 매우 중대한 문제제기라 전재한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본존불과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살펴보면 아주 결정적인 실수들이 발견된다. 그런 실수들은 수정되지 않고 계속 인용의 인용을 거듭하고 있는데 분명 밝혀 두어야 할 문제다. 대표적이며, 치명적인 실수는 바로 부석사 원융국사비의 내용 인용이다. 대부분의 논문에서 이지관 스님이 번역한 것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데 왜 원문은 살펴보지 않는지 의문이다. 아래는 이지관 스님의 번역문이다. "이 절은 의상조사께서 중국인 서화(西華)에 유학하여 화엄(華嚴)의 법주(法炷)를 지엄(智儼)으로부터 전해 받고 귀국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본.. 2020. 11. 11.
불창기둥 해남 화원면 청자요지 발굴상보 이 블로그 직전 포스팅 불창기둥 드러낸 해남 신덕리 초기청자가마를 통해 이 청자가마 소식을 간략히 전했거니와, 이 자료는 실은 그제 작성만 해두고 미공개로 돌려놨다가 마침 오늘 아침 해남군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했기에 공개로 돌렸으니, 조사단인 민족문화유산연구원을 통해 조사 관련 상세 성과 자료를 받았으므로 이를 전재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민족문화유산연구원이 해남군을 통해 배포한 보도자료 전문이다. “고려 초기 청자 생산의 거점” 해남 화원면 청자 요지 현장설명회 - 청자 가마 최초의 불창시설과 중국 월주요의 비색(秘色)청자를 구현한 최고급 청자 확인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해남군(군수 명현관)이 발주하고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원장 권혁주)이 조사한 ‘해남 화원면 청자 요지’(전라남도기.. 2020. 11. 11.
불창기둥 드러낸 해남 신덕리 초기청자가마 해남 화원면 신덕리 초기청자 가마터 발굴현장입니다. 고려시대 가마로는 최초로 소성실 사이에 불창기둥(장염주障炎柱)이 있네요. 유구가 중첩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 길이 50m 정도 입니다. *** 이상 해남 현지 장남원 특파원 보곱니다. 도자사 전공 한성욱 선생이 원장인 민족문화유산연구원에서 팠단다. 불창기둥, 곧 장염주가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장 특파가 아래 중국가마 도판을 보내준다. 그렇담 저 기능이 뭐냐? 이거다. 火로 표시한 부분이 장작불..불길이 그대로 가마 안쪽으로 훅 빨려들어감을 방지하고자 틈이 있는 비름빡 칸막이를 친다. 이리하면 불길이 고루, 가만 안쪽으로 번지게 된다. 불이 천천히 골고루 퍼지게 하고 기둥들 때문에 불길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장 특파가 붙인다. 물론 .. 2020. 11. 11.
"억울해요" 김유신이 읍소한 귀신은 미추왕? 태종무열왕? 중종실록 72권, 27년(1532) 3월 1일 경술 1번째 기사에는 기장機張으로 유배된 생원生員 이종익李宗翼이란 사람이 올린 상소가 실렸으니, 그 내용은 박운朴雲·이행李荇·이항李沆·김극성金克成·조계상曺繼商·유여림兪汝霖을 다시 등용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서 이종익은 임금한테 충성하다가 나중에 억울한 일을 당한 역사상 인물들을 거론했거니와, 그네들 처지를 빌려 임금이 그런 충신들을 물리쳐서는 안 된다는 요지다. 이 상소가 주목할 점은 그 시대 그러한 정당성을 홍보하는 논거로 흔히 중국 역사에서 사례를 빌려오는 일이 허다하지만, 이종익은 유독 한국사상 인물에서 그런 보기를 찾았으니, 이에서 인용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김유신이다. 다만 우리가 유의할 점은 있다. 김유신은 임금한테 충간했다 해서 억울하게 쫓겨.. 2020. 11. 10.
내가 논문에서 계발되는 건 터럭만큼도 없다 내가 역사 관련 책이 무지 많을 줄로 안다. 그래 좀 많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소위 학문적 분파로 논한다면 저 분야에 속하는 장서 비중은 높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소위 역사 관련 책 읽지 않아도 역사 고고 미술 건축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웃으리라. 하지만 나는 논문 같은 잡쓰레기는 멀리한다. 선행연구를 대접하는 것과 논문을 중시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다. 나를 개발하는 건 남들 논문이 아니요, 태백이요 두보요 《용재수필》이며 《지봉유설》이며 《운급칠첨》이요 《문자文子》다. (2017. 11. 10) *** 내 얘기도 하기 바빠 죽겠는데 내가 미쳤다고 남이 쓴 글을 보겠는가? 남의 논문 보고 쓴 글은 제아무리 버둥해봐야 따라지다. 젤로 무익한 논문이 무슨 재검토라.. 2020.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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