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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이 머금은 절대고독 한시, 계절의 노래(56) 죽리관竹裏館 [당唐] 왕유王維 / 김영문 選譯評 그윽한 대 숲에나 홀로 앉아 거문고 타다가또 긴 휘파람 숲 깊어 다른 사람알지 못하고 밝은 달 다가와비춰주누나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근대는 빛과 함께 왔다. 모든 빛(文明)은 어둠과 야만을 적대시한다. 우리는 밤을 몰아낸 찬란한 빛 속에서 산다. 그윽하고[幽] 깊은[深] 대숲[竹林]은 사라진지 오래다. 죽림에 숨어 살던 현인들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으며 하나의 생명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절대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현대인은 자신의 고독을 보듬기 위해 산으로 강으로 몰려 가지만 이제 우리 산천 어디에도 고독을 음미할 장소는 없다. 산도 강도 욕망에 굶주린 암수 군상들의 시끄러운 캬바.. 2018. 6. 3.
외진 모래톱에서 춤추는 고니 한시, 계절의 노래(55) 절구 여섯 수(絕句六首) 중 첫째 당(唐) 두보 / 김영문 選譯評 태양은 사립 동쪽강에서 뜨고 구름은 집 북쪽뻘에서 이네 대나무 높이 자라비취새 울고 모래톱 외지니고니 춤추네 日出籬東水, 雲生舍北泥. 竹高鳴翡翠, 沙僻舞鵾雞. 한시에서 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자연 속 사물에 의탁하는 방법을 흥(興)이라고 한다. 자연을 통해 마음 속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시경』에 수록한 시에서 매우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한 수법이다. 그것은 은유일 수도 있고 상징일 수도 있지만 독자는 시인의 본래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말하자면 시인의 주관과 독자의 주관이 자연이라는 객체를 매개로 무한한 상상 속에서 만나는 셈이다. 이와는 달리 묘사 대상을 직접 객관적으로 펼쳐서 써내는 방법은 부.. 2018. 6. 3.
지는 꽃 애달파 한시, 계절의 노래(54) 모란꽃을 아끼며 두 수[惜牡丹花二首] 중 둘째 [당(唐)]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적막 속에 시든 붉은 꽃비를 향해 쓰러지니 고운 모습 헝클어져바람 따라 흩어지네 맑은 날 땅에 져도오히려 애달픈데 하물며 진흙 속에흩날리는 꽃잎이야 寂寞萎紅低向雨, 離披破豔散隨風. 晴明落地猶惆悵, 何况飄零泥土中. 신라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에 등장하는 꽃의 왕이 바로 모란이다. 같은 시기 당나라에서도 모란을 재배하고 감상하는 붐이 일어나 모란이 만발하면 도성 장안 전체가 미친 열기에 휩싸였다고 한다. 대체로 중국 남북조시대에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모란은 수·당(隋·唐)시대에 모란 신드롬이라 불러도 줗을 만큼 애호의 절정에 달했다. 이후 열기가 잦아들기는 했지만 청나라 말기에 이.. 2018. 6. 3.
벼는 새파란데 세곡 창고는 수리 중 한시, 계절의 노래(53) 농가 두 수(田家二首) 중 첫째 당(唐) 섭이중(聶夷中) / 김영문 選譯評 아버지는 들판밭 갈고 아들은 산 아래황무지 개간하네 유월이라 아직벼도 패지 않았는데 관가에선 벌써창고 수리하네父耕原上田, 子斸山下荒. 六月禾未秀, 官家已修倉. 예나 지금이나 국가는 막대한 세금을 거둔다. 국민의 피와 땀이 서린 돈이므로 이를 흔히 혈세(血稅)라 한다. 혈세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낸 공금이다. 그걸 국민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사사롭게 유용하는 자를 세금 도둑이라 한다. 혈세를 제 마음대로 쓰므로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나 드라큐라라 불러도 무방하다. 일도 하지 않고 혈세를 꼬박꼬박 받아 챙기는 자들, 혈세를 눈먼 돈이라 여기고 착복하는 자들은 모두 역적 패거리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피를 빨.. 2018. 6. 1.
수레바퀴가 짓뭉갠 화초 한시, 계절의 노래(51) 산중 절구 다섯 수[山中五絶句] 중 돌이끼[石上苔] [당唐]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빼곡빼곡 얼룩얼룩돌 위의 이끼는 그윽한 향기 초록빛으로속세 티끌 끊었네 길가의 화초는찬란한 꽃 피우지만 화려한 수레 다가오면바퀴에 깔리네 漠漠斑斑石上苔, 幽芳靜綠絶纖埃. 路傍凡草榮遭遇, 曾得七香車輾來. 햇볕 들지 않는 곳에도 생명은 자란다. 그곳에도 작은 생명이 이룬 짙푸른 세상이 있다. 보이지 않는다 해서 없는 세상이 아니며, 들리지 않는다 해서 존재하지 않는 천지가 아니다. 저렇듯 낮은 곳 생명도 물과 공기를 정화하며 온 우주를 풍요롭게 한다. 뉘라서 어둡고 낮은 우주를 비웃는가? 삼척 이끼 계곡에 가본 적이 있다. 계곡 가득 뒤덮인 이끼 천지에 마음이 아득했다. 이끼 위로 맑은 물이.. 2018. 6. 1.
올챙이 다리 나고 앵두는 익는데... 한시, 계절의 노래(50) 초여름 산골 살이 두 수[初夏山居二首] 중 첫째 [근대近代] 비공직費公直 / 김영문 選譯評 보리 추수 해야 할 때비바람 잦아 밤 들어 가벼운 우레베개 스치네 올챙이는 개구리 되고앵두 익으니 좋은 시절 유수 같아시름 어쩌나 麥秋天氣風雨多, 入夜輕雷枕迪過. 蝌蚪成蛙櫻結子, 年華似水奈愁何. 보리는 봄과 여름 사이에 거두지만, 가을 추수에 빗대 이 시절을 맥추(麥秋)라 한다. 절기로는 망종(芒種)에 가까워 봄꽃이 모두 지고 신록이 짙어지는 때다. 보리를 거둬 찧으면 춘궁기가 끝나고 여름으로 들어선다. 봄에 부화한 올챙이는 뒷다리가 나오면서 어른 개구리로 변한다. 미녀 입술 같은 앵두는 진홍색을 더 한다. 화려한 봄날은 눈 깜짝할 새 지나고 더위와 장마가 들이친다. 자연의 질서는 이처럼.. 201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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