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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보고서 교정 일례 가마의 규모는 잔존 길이 746cm, 최대 너비 246cm이다. 소성실의 규모는 잔존길이 427cm, 최대너비 220cm이며, 소성실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이다. 소성실 바닥에는 암키와가 일부 깔려 있어 기와를 적재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연소실의 규모는 길이 210cm, 최대 너비 246cm,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최대 높이는 170cm이다. 연소실과 소성실의 사이의 단벽은 굴광면에 기와를 쌓고 점토를 발라 조성되었으며, 단벽의 높이는 70cm 이다. 아궁이는 46×40cm 크기의 할석과 점토를 이용하여 축조되었으며, 이맛돌은 유실되었다. 곤친다. 가마는 현재 남은 기준으로 길이 746cm, 최대 너비 246cm다. 기와를 굽는 공간인 소성실은 남은 기준 길이 427cm, 최대 너비 220cm이며, 평.. 2019. 7. 3.
Come to me to ease ur pain : Medicine Buddha Bhaiṣajyaguru or the Buddha of healing and medicine on the east face to the four-sided sculptures at Gulbulsa Temple Site in Gyeongju / 慶州掘佛寺址石造四面佛像中東面 藥師佛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중 동편 약사불 This Buddha is thought to be the work of the 8th century Unified Silla period. Among the Buddhas, Bhaiṣajyaguru is regarded as the Buddha who presides over the East. 2019. 7. 3.
휩쓸리는 민족성? 오늘인 2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영화 '알라딘' 국내 매출이 715억3천319만849원을 기록했다 한다. 이는 중국 내 흥행 수익 3억6천746만4천 위안(한화 623억7천333만9천360원)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배급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는 설명했다는 것이다. 수국..이 역시 쏠림의 대표적 문화현상이다. 여름꽃으로 좋다하니 지금 대한민국은 수국공화국이다. 한국이라는 시장, 혹은 그 면적 때문인지 우루루 어느 하나가 좋다하면 일순간 그 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영화흥행기록을 보면 잘 드러난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여파를 빌려 흥행독주하던 기생충도 뒤늦게 치고든 알라딘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물론 기생충도 천만 턱 밑까지 관객을 채웠으니 물릴대로 물린 흥행기록을 썼다. 알라딘 .. 2019. 7. 2.
경향신문은 아직도.. 오늘 조간 중 강렬한 내셔널리즘 성향을 표방하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두 개만 골라 1면을 본다. 글 기사는 비단 두 신문만이 아니라 모조리 일본정부의 대 한국 수출금지 조치 발표를 머릿기사로 삼았거니와 그런 가운데서도 유독 경향만은 여전히 전전날 판문점 남북미정상회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다. 아주 뽕을 뽑을 듯한 자세다. 2019. 7. 2.
퇴임 이후 연구서 쏟아내는 민병훈 "십이지는 시공을 초월한 유라시아 지역 공통어"송고시간 | 2019-07-02 06:30중앙아시아사 연구자 민병훈 박사,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 출간 참 희한한 형이다. 형은 재직시절에 끊임없이 책은 퇴직하고서 내겠다고 했다. 그때 이르기를 번역물과 창작물 다 합쳐 대략 10권 정도를 예상하는데, 재직 중에는 낼 시간도 없으니 퇴직하고서 작은 연구실 하나 내고는 열공해서 내겠다고 했다. 나 이런 사람 무지하게 많이 봤다. 나 그렇게 큰소리 뻥뻥쳤다가 공수표 날리는 사람 또한 무수히 봤다. 개중 어떤 이는 퇴임 무렵 그나마 하는 일이라고는 그간 이곳저곳 발표한 논문이나 수상록 엮어 내기도 했다. 물론 흩어진 본인 글을 모아 그것을 엮어낸다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을 테고, 그것 역시 적지 않은 에너지와.. 2019. 7. 2.
매장문화재가 장의사였던 시절, 埋葬과 埋藏 사이 오늘 현재 전국에 걸쳐 100곳 이상을 헤아리는 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을 그 등장 초창기에는 매장문화재연구원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으니, 1994년 8월 5일, 그 시초를 알리며 출범한 기관 역시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었다. 이 연구원은 결국 1999년 9월 9일, 이름을 영남문화재연구원으로 바꾸는데, 가장 중요한 차이라면 '매장'이라는 말을 뺀 것이다. 이 매장을 애초 '埋葬'이라 했는지, 혹은 '埋藏'이라 했는지 자신은 없지만, 그네들이 표방한 목적을 본다면 아마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매장'이라는 말이 사회에 통용하는 가치다. 고고학계를 벗어난 데서는 모두가 전자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나 동물과 같은 시체를 묻는 일을 하는 곳이라 인식하는 일이 많았다는 점이.. 2019.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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