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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형동검 찍어내는 틀[요양박물관] 요양박물관辽阳博物馆馆 소장 곡인 청동 단검 석범曲刃青铜短剑石范이라 해서 간단히 우리가 용범 혹은 주물틀이라 부르는 청동기 주물하는 기구다. 놋물 녹여서 저기다 부어서 칼을 만들어냈다. 가로 31.8cm, 세로 7cm, 두께 6.9cm. 1990년 탄수향甜水乡 탑만촌塔湾村 출토품이다. 재질은 활석滑石이다. 공식 명칭은 곡인청동간검범구曲刃青铜短剑范具.두 벌 한 쌍인 쌍면범구双面范具다.첫번째 틀에서 찍어낸 칼은 검신剑身이 비교적 넓고, 날은 휘어지며 비파 모양이다.(중국애들도 비파라는 말을 심심찮게 쓴다.)중앙이 고척高脊, 곧 산맥을 형성하며 앞부분 마디가 뾰족하다.두번째 틀은 검신이 상대적으로 좁고, 기둥 모양 능선柱状脊을 형성하며 곡날이고, 날잎刃叶 아래쪽은 바깥으로 벌어진다.위쪽은 거의 편평하고 곧아서.. 2025. 3. 19.
일본 가거든, 중국 가거든, 유럽 가거든 나는 일본학도들이 한국현장 휘젖고 다니며 자기집 앞마당으로 여기며 한국사 연구자 행세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당연히 연구자라면 그리해야 한다고 본다. 한데 도대체 이 놈의 대한민국 역사학도나 고고학도는 왜 반대편 일본으로 가서 그러지를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우리는 일본을 내 집 마당으로 삼지 못하는가? 그 무수한 고고학자료 중에 오직 스에끼만 보이고 금동신발만 보인다는가? 일본 가서 일본을 파고들어야지 고작 가서 하는 짓이라고는 한일교류사니 해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거 그리고 일본에서 건너온 거그래서 겨우 떠든다는 이야기가 김해인가 어디에서 야요이 토기 꼴랑 한 점 나왔다고 그걸로 해상무역 개사기나 치는 일이겠는가?일본 갔으면 전방후원분 그 자체를 파고 조몽을 파고 야요이 .. 2025. 3. 19.
개밥 그릇에 밥이 된다 해서 밥그릇이 아니다 실험고고학이 고고학 대중 문화상품과 결합하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는 일 무척이나 고무적이며, 당연히 활성화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심각히 우려할 현상도 없지 않아 아슬아슬한 장면을 여럿 보는데 실험해서 뭐 어찌 써 보니 되더라 해서 곧바로 그런 식으로 확정되는 것이니천만에 반달모양돌칼로 벼 이삭 베어 보니 되더라?그래서 수확기?웃기는 짜장이다. 이쑤시개로 귀를 후벼 보니 되더라 해서 귀후비개로 보는 일 만큼이나 불안하기 짝이 없다. 무슨 토기인지 모르겠는데 몇 군데서 그 출토품으로 밥을 해 본 모양이라 해 보니 밥이 잘 된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는 모습을 고고고학도들한테서 들어 봤는데 이 또한 웃기는 소리다. 개밥그릇도 밥 잘 된다. 그래서 그것이 사람 밥그릇이다는 것은 .. 2025. 3. 19.
후연後燕 창려태수 최휼崔遹의 죽음과 그의 무덤 후연后燕 최휼崔遹 이라는 사람 두 장짜리 묘표墓表다.간단히 묘지명이라는 뜻이다.우리가 말하는 비석이 보통 무덤 밖에 세우는 데 견주어 저런 묘표는 무덤 안에다가 묻어버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둘 다 무덤 주인을 표시하기 위함이라는 데서는 다른 길이 없다. 1979년 6월, 요녕성 조양시朝阳市 조양현朝阳县 유성 유지柳城遗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이 조양현朝阳县 십이대공사十二台公社 사가자四家子 대대大队 요금구姚金沟 소대小队(지금의 조양현 朝阳县 유성가도柳城街道 요이영자촌腰而营子村 대요금구촌大姚金沟村 민조民组) 마당 지하에서 드러났다.무덤은 정식으로 이듬해 9월에 조사됐다. 두 묘표는 같은 내용을 적었고, 더구나 같은 무덤에 묻었다는 점에서 이상하다. '동東'이라는 글자 하나만 있고 없고 차이가 난다. 이는.. 2025. 3. 19.
사람 모양 자루 갖춤 비파형동검? 이 청동검은 자루 슴베를 사람 모양을 본떴다는 점에서 나름 독특하나 저짝에선 가끔 보인다. 어째 저건 불수록 동아시아 맥락이 아니라 다른 저짝 문화권에 뿌리를 두는 듯한 느낌을 나는 많이 받는다.사람을 저런 모티브로? 영 동아시아에서는 낯선 풍경이다.공자님이 보았다면 불호령 나왔을 디자인이다.암튼 저런 까닭에 저짝 중국에서는 인형병곡인검人形柄曲刃剑이라 부르는 모양이라柄[병]이 자루라는 뜻인 그 자루를 사람 모양으로 표현했다는 뜻이다. 몸체는 이른바 비파형이다. 제조 시점을 춘주春秋晚期로 설정했으니, 춘추시대가 대략 기원전 400년대에 끝나니 그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었다고 보는 모양이다. 1958년 내몽고内蒙古 영성 남산근 유지 宁城南山根遗址 라는 데서 출토했으며 현재는 적봉시문물첨赤峰市文物站에서 보관하고.. 2025. 3. 19.
[또라이 고고여행] (6) 비파형동검, 장갑은 어디 갔는가? 흔히 바이킹 시대를 무대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저런 식으로 무장 양태를 설정한다. 저딴 모습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도끼?저러다 칼 맞고 뒤지기 십상이다. 뭐 도끼 들고 칼 잡으면 그게 강인해 보이니?저기서 또 하나 새빨간 거짓말이 있다. 양손에 저 무기를 바이킹 전사는 맨손으로 잡았다!저게 가능하기라도 할 법한가? 무엇이 없는가?장갑이 없다. 장갑은 어디로 갔는가?전날 외상으로 술먹고 주모한테 저당잡혔는가?맨손으로 잡았다고?너가 잡아봐라. 손바닥 껍디 다 벗겨진다. 하다 못해 목장갑이라도 껴야 한다. 말 나온 김에 나는 이 목장갑, 특히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바닥면에 뺑끼칠을 한 이 목장갑이야말로 한국문화가 세계를 향해 발신해야 하는 K-헤러티.. 2025.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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