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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동명이인에서 가끔 돌출하는 문제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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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이 된 김태식

 
얼마 전 어느 대학 기관에서 그 기관지 투고 논문을 심사해 주었으면 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 심사 논문 주제를 보니 아무래도 나 김태식이 아닌 홍익대 교수를 지낸 가야사 전공 그 김태식 선생과 혼동한 듯해서 내가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혹 홍익대 계시던 김태식 교수님이랑 혼동하지 않으셨는지요? 제가 고대사 관련 논문이나 책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저는 연합뉴스 기자로 오래 있던 김태식이라 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쪽 편집위원 어떤 분이 분명히 연합뉴스에 있던 김태식을 추천했다고 하면서, 이 김태식이 맞다 해서, 그렇다면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서 보냈다. 

김태식.

약간 촌스럽고, 또 영화 같은 데서 보면 김태식은 꼭 악인으로 나오는 일이 많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지만, 그렇지만 이 이름을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당장 내가 저짝에서 31년을 봉직한 그 회사만 해도, 하필 같은 기자직 대선배님으로 동명이인이 계셔서 회사로 오는 우편물마다 두 사람이 뒤죽박죽인 일이 많아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거니와 

그것을 벗어난 다른 업계, 곧, 이쪽 역사쪽만 해도 나 역시 이런저런 인연으로 한 다리 두 다리 걸친 일이 많아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sns 같은 데서는 나를 홍익대 저 김태식 선생으로 알고 찾아오시는 분이 있어 일일이 아니라고 하기도 요새는 좀 그래서 그냥 지켜만 보고 만다. 

저 범위를 벗어난 동명이인이야 무슨 관계가 있으랴?

하지만 분야가 걸치는 데서 이런저런 해프닝이 더러 생기는데, 이제 저 역사학도 가야사 전공 저 양반이야 노인이 되었지만,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가는 중이라,

요즘은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이 둘을 혼동한 일이 가끔 생기기도 했으니 

심지어 저 김태식 선생으로 알고선 나한테 논의 투고 의뢰까지 왔으니, 내가 씹어버린 적 있다.

그러기에는 내가 저 김태식 선생과 친분이 따로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요, 학술대회장 같은 데서 가끔씩 마주친 정도에 지나지 아니하며,

나아가 그가 주장하는 가야사 대계를 내가 찬동하는 것도 아니니 더더욱 관계가 소원할 수밖에 없다. 

언제던가? 저 양반이 가야사 단행본으로 3권을 한꺼번에 낸 적이 있는데, 그 서평을 당연히 연합뉴스에서는 내가 했다.

당시 이미 기자실명제가 정착할 때라 제목에 김태식, 기자 실명에 김태식, 본문 곳곳에 김태식이 범벅이 되는 일도 있었으니 그걸 쓰면서도 나 역시 한참이나 웃고 말았다. 

글타고 나보다 연배도 많은 저 양반더러 개명하여 김태석이 되시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 역시 개명할 생각이 없다.

큰아버지가 주신 소중한 이름인 까닭이다. 

모르긴 해도 아마 저쪽으로도 나와 관련한 일화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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