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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개뻥으로 얼룩진 광개토왕비는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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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의 고구려 강성주의자들과 그에 기초한 강성한 한민족 내셔널리스트들은 몹시도 저 절대하는 성전인 광개토왕비문이 실은 과장 축소 왜곡으로 얼룩졌다는 말에 분개할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내가 이를 줄기차게 틈날 때마다 지적하는 이유는 당대 기록일수록 저럴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함이며, 나아가 그것을 사실FACT로 간주하는 출발 자체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저 광개토왕비문은 벌써 그 절대하는 뿌리는 고구려왕실의 출발 자체부터 역사왜곡으로 출발한다. 이 고구려가 출발한 내력은 부여 왕실에서의 권력투쟁 패배다. 그에서 패한 주몽 혹은 추모는 결국 부여를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그 도망 과정에서 추격병을 피하느나라 목숨을 건 도박을 했다. 

도망길에 가로막고 선 엄리대수에서 자라 혹은 거북이 기어올라 부교를 만들어주었다는 이 표현은 전형적인 서징瑞徵의 표상이라, 거북 혹은 자라는 언제나 그럴 때 뿅하고 등장해서 네 앞날은 축복받으리라는 전조였다. 

나아가 그에서 비롯하는 제2대 유리왕 등극 과정도 교묘한 역사조작이 있다. 건국주 추모는 결국 조강지처 아들 유리를 후계자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 건국을 도왔고 실질적인 건국 공동주체이면서 지분 51%를 소유한 소서노라는 여인한테서 본 두 아들 비류와 온조는 자기 자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권을 양아들한테 줄 수는 없었다. 

이에서 두 번째 건국드라마가 펼쳐지는데 그것이 바로 백제건국신화다. 

이 권력 교체과정은 누가 봐도 부당했지만, 이 과정을 저 비문은 유리한테다가 고명세자라는 타이틀을 집어씌움으로써 정당화하며, 이 고명세자라는 표현을 통해 저 비문이 시종일관 까부시고 경멸하고자 하는 백제 왕실에 대한 우위를 선언하고자 한다. 

저 고명이라는 말을 무심히 넘길 수 없다. 

기타 화려한 광개토 군사업적이라는 것도 뜯어보면 집이라 해 봐야 열채 남짓한 마을 하나 불태운 것도 침소봉대했으며 겨우 군사 몇 명 보낸 일도 기병 보병 5만명을 신라로 보내 구원했다고 한 것도 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당시 군사 5만은 고구려가 쥐어짜내서 총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 절대치 최대치였다. 그런 군사력을 어찌 이웃나라게 파견한단 말인가? 이는 미국이 50개 주방위군까지 다 빼내서 한반도에 주둔케 하고서는 북한과 소련과 중국과 맞섰다는 말만큼이나 어불성설하다. 

내가 시종하고 일관해서 말하고자 하는 개뻥론은 그래서 저 비문은 자료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매양 말하듯이 조선시대 문집 또한 저와 똑같은 사정이거니와, 그것이 뻥이기에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인 까닭이다. 

저에는 저 시대 그네가 꿈꾼 세계 혹은 가치관이 있다. 그 가치관을 엿보기에 저 자료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를 파고드는 줄기다. 

나아가 광개토비문은 그것이 발견되고 알려지게 되면서 또 하나의 거대 대하드라마를 쓰게 되거니와 그 소비를 둘러싼 양태와 그 양태에 숨은 이데올로기 욕망의 무대다. 이 욕망하는 이데올로기들이 써내려간 장편 서사시를 분석한 일 또한 광개토가 여전히 20세기 21세기에도 역사학을 먹여살린 양식이요 메시아적 외침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시종 개뻥론은 저 뻔한 거짓말 저 뻔한 과장 저 뻔한 역사왜곡은 패대기친 채 저것이 곧바로 당대 역사적 정황이요 팩트라는 굳은 신념으로 무장한 채 그 시대사를 바라보는 관점 그 자체다. 

사료비판 사료고증을 절대 도덕율로 무장한 한국역사학계에서는 신통방통하게도 저 뻔한 거짓말을 뻔한 거짓말이라고 하는 놈조차 내가 구경을 못했다. 

광개토 출발은 저 개뻥론이다. 저들이 왜 저런 개뻥을 쳤으며, 그 개뻥은 어떤 이데올로기 소산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고구려 천하관? 웃기고 있네, 그딴 거지 같은 어린아해 장난 같은 말로 저 시대를 설명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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