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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객관이 사라진 자리에서 자라는 어용御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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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렇게 삐걱거린 원인을 역사학자들은 아주 다르게 보았다. 김유신 가문이 가야계인 까닭에 여타 신라 전통의 소위 골품제 사회에서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았으며, 차별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별론은 마침 김유신 여동생인 문희가 김춘추와 결합하는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는 사건과 맞물려 더욱 증폭되어 그것이 마치 역사의 해답인양 통용되는 실정이다.

 

이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단재 신채호에게 닿는다. 이민족을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했지만, 그 통일은 불완전했다는 이유로 김유신을 경멸한 단재는 멸망한 가야계 왕족 후손으로서 김유신이 신라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갖은 모략을 일삼을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역사를 농단했다.

 

신채호...이 냥반 참 묘해

 

하지만 이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런 가야계 혈통 차별론은 그 결과 어느 것도 설명하지 못 한다. 나아가 김유신 가문의 승승장구 그 어떤 것도 해명하지 못한다. 

 

정말로 가야계라서 김유신 가문이 신라사회에서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면, 어찌하여 그의 할아버지 무력은 고속승진을 거듭하고 전쟁 영웅이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으며, 더구나 그 아들 서현 역시 출세 가도를 해명할 길이 없다. 무엇보다 서현과 만명의 결합, 그리고 김춘추와 문희의 결합이 야합이었건 아니건 간에 상관없이 그 결혼은 성사되었고 용인되었다는 사실 그 어느 것도 가야계 혈통 차별론은 설명할 수 없다.

 

요컨대 단재에게 뿌리를 박는 저런 역사 해석은 허무맹랑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지난 100년간의 신라사를 해명하는 만능열쇠처럼 통용하는 실정이다. 이는 역사학의 죄악이요 패악이다.

 

(2016. 4. 17)

 

*** 

 

그 시대가 요구한 역사가 있다. 단재가 저리 역사를 주물한 이유도 있다. 역사는 어용이라, 그 어용에 충실해야 했으니, 그리하여 단재는 자신의 입론을 뒷받침하고자 역사를 주물했다. 예컨대 항용 하는 말로 독립투쟁 고취를 위해 저와 같이 했을 수도 있다. 

 

역사의 객관?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없는 거짓말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역사는 객관이 불가능하겠지만, 그 객관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 객관이 사라진 자리에 어용이 자랄 뿐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저때 저 글을 왜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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