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초고처럼 써내려 가는 시리즈라 할 만한 것이 거란의 치맛바람이라, 이를 시작하게 된 직접 발단은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있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정식으로 시청한 적이 없고, 다만 강감찬이 담판하러 거란 진영을 들어가는 장면을 잠깐 보았을 뿐이다.
더욱 정확히는 거란 성종이 소배압을 앞세우고 출정한 고려 원정을 아주 잠깐 보면서, 이전에 내가 요사를 통독하며 느낀 의문이 다시금 떠올랐거니와, 그것을 나로서는 푸는 과정이 거란의 치맛바람이라 해 둔다.
이 공부가 얼마나 계속될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튈지 나 자신도 가늠하지 못한다.
애초에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시류에 편승한 글쓰기로 시작했지만, 기왕 이리 된 거 무엇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겠다.
아무튼 앞뒤 맥락에 전연 실종한 이 장면을 보며 나는 그 옛날 요사遼史를 통독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에 등장하는 성종은 이미 장년이 되어 한창 팔팔할 때라, 그러면서 언뜻 생각하기를 서희가 강동6주를 세치 혀로 받아올 때는 저 친구가 강보에 쌓여있을 때라, 그때도 요사를 통독하며 이 1차 전쟁을 주도한 이는 누구였을까를 고민한 적이 있거니와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다시금 요사를 끄집어 내어 위선 본기부터 빠개고, 다시 열전을 독파하는 중이다.
본기를 다시 통독하는 과정에서 황후 혹은 황태후가 수행한 여러 역할이 나로서는 이채롭게 다가왔거니와, 위선 이 부문을 손대자 해서 시작했으니, 저 이야기 얼개는 거창한 무엇이 없어 요사 본기랑 그 열전 중 후비后妃 열전을 요약 재가공한 데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전재하는 일은 내가 용납할 수 없고, 요사를 통독하며 나는 나 자신을 시험하는 중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내가 기간 다른 역사문화를 공부하면서 내가 깨쳤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거란에서는 어찌 나타나는가를 확인하는 차원이라 말해둔다.
거란은 나로서는 생소 그 자체다. 물론 아주 생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시대사 문화사에 견주어 나로서는 미답 그 자체다.
이 미답지를 헤집고 다니는 재미는 제법 쏠쏠한데, 무엇보다 내가 지금껏 다른 시대사 문화사를 배우며 깨친 것들이 제대로였는가 아니면 근간부터 틀려먹였느냐를 매순간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저 연재야 제대로 읽는 분이 얼마나 될까 의문스럽기는 하다만, 나는 내내 족내혼 족외혼 문제를 논급하거니와, 그것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나로서는 수십년 공부를 쏟아부은 결론이며, 그 결론이 그대로 거란 사회에서도 통용함을 보면서 나로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는 말은 해 둔다.
그 현장이라 할 만한 데는 비록 수박 겉핥기를 면하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한창 중국 답사에 정신이 팔렸을 적에 돌아본 적은 있지만, 앞으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거란과 여진만을 염두에 두는 그런 장기 여행을 해 봤으면 하는 마음 굴뚝 같다.
이 거란 공부가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생소에 대한 탐구다. 새로운 분야를 시도한다는 일 자체가 주는 그런 야릇함 오르가즘이 왜 없겠는가?
지금은 치맛바람이지만, 허리케인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고려거란전쟁 #강동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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