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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견강부회한 건원릉 함흥 억새설

by taeshik.kim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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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은 서오릉과 더불어 조선왕릉 대표 공동묘지라, 구리 동구릉은 무엇보다 그 창건주 이성계가 묻힌 곳이라 해서 조선왕가 공동묘지 중에서도 언제나 으뜸이었으니, 왕릉은 이름이 각기 따로 있어 이성계 무덤은 건원릉健元陵이라 하니, 元이라는 글자 자체가 비롯 으뜸이라는 뜻이며 健은 그 앞에 붙인 열라 좋다는 형용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조선왕릉 이름이 두 음절인데 견주어 굳이 이성계 무덤만 3음절로 삼은 데서 그 특별대우를 본다.

억새 무덤은 실은 지저분하다.



동구릉을 차지한 왕릉 중에서도 북극성 위치를 차지하는 건원릉은 여타 조선시대 무덤과 구별하는 대목이 있어 그 봉분 띠풀로 억새를 심었다는 대목이어니와, 여타 왕릉 나아가 다른 사대부가 무덤이 잔디를 심는 전통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억새는 무성하게 자라며 땅으로 기어다니는 잔디와는 달리 빽빽한 데다 듬성듬성해서 노인네 눈썹 같기만 하다. 이런 억새를 매양 한식 무렵이면 베어내는데 소분掃墳 의식 일종이라, 요새는 그것이 미디어영상시대에 맞는다 해서 매양 기자들 불러다가 우리 이때 이성계 왁싱합니다 라고 해서 쇼를 연출하니, 광목천 같은 전통시대 노가다 복식을 하고는 낫질을 해댄다. 그냥 예초기로 밀지 뭐 힘들게 낫질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건원릉 봉분 풀만은 억새인가?

이를 둘러싸고 실로 그럴 듯한 소문이 사실로 둔갑해서 통용하니, 북방 여진족 출신인 이성계가 북방, 특히 그 본거지인 함흥을 그리워해서 그곳을 대표하는 억새를 내 무덤에 심었으면 하노라 하는 유언을 하고는 껠꼬닥하셨기에 저리되었다는 전설이 마치 사실처럼 통용하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다.

왁싱 중인 이성계


물론 저 전설이 내력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실제 저런 유래가 있다고 적은 조선시대 증언이 많다.

예컨대 실록만 해도 인조 7년 기사(1629) 3월 19일(을해)에 이르기를

상이 주강晝講에 자정전에서 《서전》을 강하는데 동경연 홍서봉(洪瑞鳳)이 아뢰기를,

“건원릉(健元陵) 사초(莎草)를 다시 고친 때가 없었는데, 지금 본릉에서 아뢰어 온 것을 보면 능 앞에 잡목들이 뿌리를 박아 점점 능 가까이까지 뻗어 난다고 합니다. 원래 태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북도(北道)의 청완(靑薍)을 사초로 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른 능과는 달리 사초가 매우 무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무 뿌리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어제 대신들과 논의해 보았는데, 모두들 나무 뿌리는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되고, 사초가 만약 부족하면 다른 사초를 쓰더라도 무방하다고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식(寒食)에 쑥뿌리 등을 제거할 때 나무 뿌리까지 뽑아버리지 않고 나무가 큰 뒤에야 능 전체를 고치려고 하다니 그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지금이라도 흙을 파서 뿌리를 잘라버리고 그 흙으로 다시 메우면 그 뿌리는 자연히 죽을 것이다. 예로부터 그 능의 사초를 손대지 않았던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였던 것이니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하였다.

고 한 대목이 그것이라 이에서 보듯이 건원릉은 이성계 유언에 따라 억새를 사초로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에초기로 돌리지...


저와 같은 내력이 있다면 저와 같은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죽음과 장사를 기록한 실록, 그리고 그 동시대 혹은 직후 어느 증언에서도 저런 유교는 확인되지 않는다. 동문선에 수록된 그의 신도비명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등 어디에서도 그런 증언이 없다. 저와 같은 유교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대서특필되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이 도무지 없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저와 같은 전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잘난 체 하기 좋아하는 조선후기 오지랍대마왕 양대 산맥으로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거니와, 두 사람 모두 짐짓 잘난 체 하면 저와 같은 기록을 남겼지만 허무맹랑한 말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 어디에도 억새 이성계 유교 운운이 없다.

그러다가 수백년 지나 조선후기에 왜 등장하는가? 그 맥락을 나는 아직 찾지는 못했다. 다만 현 단계에서 짐작 수준이기는 하나, 임란 때 막대한 피해를 본 동구릉 일대가 이후 복원 중건되기 시작하면서 어쩌다가 저 무덤이 억새 차지가 되면서 손도 대지 못하고 현재에 이른다고 본다.

무슨 억새가 함흥을 필두로 하는 북방 지역 풀이란 말인가? 그래 그런 북방 풀이 천지사방 한반도 곳곳 제주도까지 장악했단 말인가?

이성계가 무슨 로맨티시즘 시인이라고 억새를 떠올리고 고향을 떠올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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