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사람들이 농담처럼 받아들일 듯하지만,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어떤 글을 쓸 때 네버에버 해당 주제 혹은 소재에 관한 이른바 선행연구성과라는 거 일부러라도 안 읽는다. 있다는 걸 알아도 안 읽는다.
왜? 그래서 하는 실수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걸 읽는 순간 내 시각을 잃어버리는 까닭이다. 내가 내 눈으로 역사를 대해야지 내가 왜 그딴 허접한 쓰레기에 휘둘려서 그게 맞니 틀리니 해야겠는가?
물론 내가 대하는 역사라는 것도 엄밀히는 2차 3차 가공한 데 지나지 아니해서 요즘 한창 손대는 고려사만 해도 고려사니 고려사절요는 조선 전기 그 역사를 정리한 조선초기 이데올로그들 시각으로 재단한 것이기는 하다.
그래도 저 시대 직접 증언이 거의 망실하고 그나마 2차 가공 3차 가공을 거친 것이기는 하지만, 저렇게라도 남았으니, 내가 내 눈으로 그것을 대면하며 그에 투영한 조선 전기 이데올로그들 시각을 해부하며, 그를 통해 아울러 그나마 남은 고려시대 흔적들을 추적하며 나는 내 눈으로 내 식으로 역사상을 구성해 내려 한다.
물론 더러 용어 해설 같은 것은 각종 사전을 참조하는 편이지만, 미안하나, 그런 사전들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는 단 하나도 없다. 고려사 백관지를 이야기했지만, 그에서도 얻는 바는 거의 없다. 이건 내 이전 경험들이다.
그래 당육전을 참조하고, 동시대 송사를 참조하기도 했지만,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동시대 중국 사례를 적용한 한국사 읽기는 내 경험에 의하면 거의 재앙에 가까운 참사를 빚어내곤 한다.
당나라 조정에 전중성이 있고, 동시대 신라에도 전중성이 있다 해서 그 역할이나 기능이 비슷하다? 까는 소리하네. 내가 볼 땐 이름만 빌려왔을 뿐이며, 그런 상통에서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들을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새로 내가 읽어내야 한다.
나는 또 매양 말하기를 나는 선생이 없는 축복을 누렸다고 했다. 선생? 없어야 한다. 선생이 있어 훌륭한 학자 배출되는 꼴을 못 봤다. 훌륭한 선생의 조건은 딱 하나다. 멍청한 선생,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 그래서 나한테 가르쳐 줄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선생이야말로 진짜 내 스승이다.
그래서 선행연구성과 개무시한 역사읽기, 선생이 없는 역사읽기가 초래하는 실수 실책 오독이 오죽 많겠으며, 나아가 그에서 도출한 것들이 이른바 선행연구성과들과 겹치는 대목이 왜 없겠는가?
말 나온 김에 특히 이 후자 얘기를 덧붙여 놓건대, 내가 내린 결론과 선행연구성과가 합치한다? 그 선행연구성과가 적어도 내 수준은 된다는 그 결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그를 동료대접해 줄 뿐이지 그가 어찌 내 선생이리오?
나한테는 선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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