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 세시기 집성은 국립민속박물관 야심작 중 하나다. 더구나 그 역주는 웹으로 무료제공하니 말이다.
이 집성을 기획할 당시 박물관 담당 과장이 김종대였다.
이후 그는 중앙대 교수로 이직했다.
중국편에 느닷없이 초학기 세시부가 포함됐다. 느닷없다 하는 까닭은 이 《초학기》를 사람들이 거의 모르기 때문이다.
그 세시부가 들어간 사연은 간단하다. 이 사업 추진 단계에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내가 초학기 세시부도 하자 해서 그리됐다.
그런 게 있느냐 김종대 과장이 물어 내가 중화서국 점교본 해당 세시부를 카피해서 넘겨주니 쓱 보고는 좋네 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그 번역을 맡은 이가 피똥을 쌌다 한다. 이 초학기엔 관련 시가가 많다. 그걸 번역하느라 똥을 쌌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미안하단 말을 한다.
(2017. 11. 25)
*** 역주한 사람은 고생했겠지만 좋은 자료를 밀어녛은 보람은 크다. 잘한 일이라 자위한다.
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년 연천 군남댐 건설예정지에서 (0) | 2020.12.05 |
---|---|
풍납토성과 이형구 (1) | 2020.12.05 |
기자 우병익, 70년대 경주 발굴의 전설 (0) | 2020.11.24 |
초장草葬과 초분草墳, 가난한 사람들의 장례 (0) | 2020.11.23 |
비단벌레를 찾아서 (1) | 2020.11.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