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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물 소개 006] 후기왕조 시대 초기 프삼테크-멘티의 “카노푸스 단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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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환 이집트학 박사 

 


관련 링크 (1): https://kallosgallery.com/blog/49-the-priest-with-the-pleasant-smell/?fbclid=IwAR29AtFt8B1Av3Lye6kSveA39JFy8Qbqa-KjC3Hdo01wLnxoQ0r7KgtVeIQ

 

The Priest with the Pleasant Smell

PROVENANCE Giovanni Anastasi (1780 – 1860) Collection, Anastasi was Consul General of Sweden and Norway in Egypt from 1828-1857 François...

kallosgallery.com

 

 

오늘의 문자유물은 “카노푸스 단지”(Canopic jar)입니다[관련 링크 (1) 참조]. 

 

 

카노푸스 단지란 고대 이집트인들이 망자의 시신을 미라(mummy)로 제작할 때 적출(摘出)한 장기를 넣어 보관하던 특수한 용기를 말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리의 생기(生氣: life force)에 해당하는 “카”(ka)가 몸을 떠날 때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망자의 시신을 미라로 방부 처리하여 안정한 상태로 만들면 “카”와 함께 자유롭게 된 인간의 혼인 “바”(ba) 역시 망자의 몸에 돌아옴으로써 영생을 위한 필요조건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에게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일은 죽음 후 영생을 누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선결과제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수한 사람은 고대 이집트인이 아니라 그리스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 출신 역사저술가 헤로도토스(Herodotus: 기원전 484-425년)였습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망자의 시신이 가족들에 의해 미라를 제작하는 전문가들이 일하는 공방에 옮겨지면 미라의 가격과 품질에 대한 흥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흥정이 끝나면 본격적인 미라 제작이 시작됩니다(『역사』 II.86):

 

“흥정이 끝나면 친족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미라 기술자들은 작업장에 남아 곧장 미라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가장 정교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쇠갈고리로 콧구멍을 통해 뇌를 꺼내고, 나머지는 콧구멍으로 약물을 주입해 녹인다. 그러고 나서 예리한 아이티오피아 산 돌칼로 옆구리를 절개하고 내장을 모두 제거한 후 배 안을 세척하고 야자술과 으깬 향료로 헹군다. 그런 다음 으깬 몰약과 계피와 다른 향료로 (하지만 유향은 사용하지 않는다) 시신의 배 안을 가득 채우고 봉합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시신을 양잿물에 70일 동안 푹 담가둔다. 그러나 절대로 70일 넘게 담가두면 안 된다. 70일이 지나면 그들은 시신을 씻고 고운 아마포로 만든 붕대로 전신을 싸고 그 위에 아이귑토스인들이 아교 대신 사용하는 고무를 바른다. 그러면 친척들이 시신을 가져가 사람 모양의 목관을 만들어 그 안에 뉜다. 그리고 관을 봉한 다음 벽에 똑바로 세워서 묘실(墓室)에 안치한다.”


헤로도토스 증언대로 미라를 제작하는 기본적인 과정은 일단 뇌를 비롯해, 간 폐 위 내장과 같은 장기를 적출한 후 사체를 소금의 일종인 천연 탄산소다(nation)에 70일 간 절여 체내 지방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뇌가 제일 먼저 제거되었는데 그 이유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뇌의 기능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뇌를 단지 시신을 손상케 하는 불필요한 장기로 여겼으며 따라서 뇌를 제거하는 것으로서 미라 제작공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간 폐 위 내장과 같은 장기가 제거되었는데 이들 장기를 제거하는 공정은 고왕국 시대 제4 왕조(기원전 2613-2494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기를 제거할 때 미라 직인職人 중 한 명이 헤로도토스가 “예리한 아이티오피아 산 돌칼”로 묘사한 흑요석 칼로 왼쪽 옆구리를 절개하여 장기를 몸 밖으로 빼냈습니다.

 

장기적출을 위해 절개한 부분은 봉합한 후 “호루스의 회복된 눈”(Sound Eye of Horus)와 같은 호부(護符: amulet)를 부착하여[“호루스의 회복된 눈”에 대해서는 2022년 4월 29일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미라 제작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긴 상처가 – 생물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 주술적으로 회복되기를 기원했습니다.

 

한편, 다른 장기들과 달리 심장은 제 자리에 그대로 두었는데 그 이유는 망자가 명계(冥界)에서 –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 125번 주문의 삽화에 묘사되어 있는 – “최후의 심판”(Final Judgement)을 받을 때 심장이 우주의 질서와 사회적 정의인 마아트(ma’at)를 상징하는 타조 깃털과 함께 저울에 올려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0일 간의 건조작업이 끝나면 고운 아마포로 시신을 감싼 후 기름을 발랐는데 이때 비로소 우리에게 익숙한 붕대로 칭칭 감긴 미라의 모습이 완성되었습니다.

 

미라 제작 과정에서 몸 밖으로 적출한 이들 장기를 보관할 때 카노푸스 단지가 사용되었습니다.

 

카노푸스 단지는 보통 용기의 몸체 부분과 뚜껑으로 구성됩니다. 신왕국 시대 제18 왕조(기원전 1550-1295년) 전까지는 4개 뚜껑 모두가 망자 얼굴 모습으로 제작되었지만 신왕국 시대부터는 “호루스의 아들들”(sons of Horus)이라고 불리는 4명의 수호신 모습이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고왕국 시대(기원전 2686-2160년) 왕실 전용 장례문서인 『피라미드 텍스트』(Pyramid Texts)에 이미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천신(天神) 호루스의 “아들” 혹은 “혼령”으로서 죽은 왕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는 신들로 묘사됩니다.

 

한편, 이들의 도상(iconography)은 앞서 언급한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 장례주문 모음집인 『사자의 서』에 수록된 오시리스(Osiris)의 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삽화에서 이들은 통상 옥좌에 앉은 명계의 왕 오시리스 앞에 솟아오른 수련 위에 일렬로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카노푸스 단지 뚜껑에 새겨질 때에는 사람 혹은 동물 모습을 한 수호신으로 형상화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임세티”(Imsety)가 간을, 비비 원숭이 모습을 한 “하피”(Hapy)가 폐를, 자칼 모습을 한 “두아무테프”(Duamutef)가 위를, 매 모습을 한 “케베세누에프”(Qebehsenuef)가 내장을 각각 보호한다고 여겼습니다[아래 관련 링크 (3) 참조].

 

또한 이들 단지가 전용 상자에 담길 때에는 이들을 보호하는 또 다른 네 여신이 배정됩니다.

 

임세티에게는 이시스(Isis)가, 하피에게는 네프티스(Nephthys)가, 두아무테프에게는 네이스(Neith)가, 케베세누에프에게는 셀케트(Serqet)가 각각 수호여신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망자의 적출된 장기가 이중의 보호를 받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호루스의 아들들과 이들 수호여신 간 관계를 가장 잘 구현한 예로는 테베(Thebes) 서안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 위치한 신왕국 시대 제18 왕조 투탕카멘(Tutankhamun: 기원전 1336-1327년) 왕묘(KV62)에서 출토된 “카노푸스 사당”(Canopic Shrine)입니다[아래 관련 링크 (2) 참조].

 

카노푸스 단지가 들어 있는 이 작은 사당 동서남북 네 방향에는 4명 여신이 안쪽을 보고 서 있는 상태로 두 팔을 벌려 사당을 수호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시스가 서쪽, 네프티스가 동쪽, 네이스가 북쪽, 셀케트가 남쪽에 각각 배치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 드린 이 복잡다단한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임세티 – 사람 – 간 – 이시스 – 서쪽
(2) 하피 – 비비 원숭이 – 폐 – 네프티스 – 동쪽
(3) 두아무테프 – 자칼 – 위 – 네이스 – 북쪽
(4) 케베세누에프 – 매 – 내장 – 셀케트 – 남쪽 

 


관련 링크 (2): https://en.wikipedia.org/wiki/Canopic_jar?fbclid=IwAR2XzjVCh3VKjFr-uWTgnjWMyPmQ6kLLmdTr4WOPfMZ1eK3CHPvIRfL9sQ4#/media/File:Egyptian_-_A_Complete_Set_of_Canopic_Jars_-_Walters_41171,_41172,_41173,_41174_-_Group.jpg

 

Canopic jar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ar in which organs are kept Complete set of canopic jars of the four sons of Horus; 900–800 BC; painted limestone; Walters Art Museum (Baltimore, US) Canopic jars are containers that were used by the ancient Egypti

en.wikipedia.org

 

 

 

관련 링크 (3):  https://www.facebook.com/Egypt.Museum/photos/a.489172547785308/2573209289381613

 

Egypt Museum - Canopic Shrine of Tutankhamun Inside this imposing and elaborate gilded shrine was the alabaster chest that cont

Canopic Shrine of Tutankhamun Inside this imposing and elaborate gilded shrine was the alabaster chest that contained the four canopic miniature coffins. At each side of this shrine stands an...

www.facebook.com

 

 

이제 오늘 살펴볼 카노푸스 단지로 넘어가보겠습니다[관련 링크 (1) 참조]. 

 

이 카노푸스 단지는 후기왕조 시대 제26 왕조(기원전 664-525년)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높이는 35.6센티미터로 일반적이 카노푸스 단지에 비해 다소 큰 편입니다.

 

몸체에 새긴 텍스트는 두아무테프와 관련한 내용입니다만 뚜껑은 비비 원숭이 모습을 한 하피의 것이며 따라서 몸체와 뚜껑 크기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단지 주인은 프삼테크-멘티(Psamtek-menty)라는 인물인데 텍스트에는 신전 수석 재무관, 셈(sem)-신관, 미라 제작자, 모든 미라 제작소 감독관, (신전) 향 담당 신관 등과 같이 그가 생전에 맡은 다양한 직함이 언급되어 있으며 이와 같은 직함을 통해 당시 신전 운영을 담당한 관리 업무범위 등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텍스트 전문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이스 여신의 언명(言明): 나는 매일 아침 저녁을 내 안에 있는 두아무테프를 보호하기 위해 보내노라. 오시리스, 신전 수석 재무관, 셈-신관, 미라 제작자, 모든 미라 제작소 감독관, (신전) 향 담당 신관, 진실된 목소리 프삼테크-멘티를 위한 보호는 두아무테프의 보호이다. 오시리스, 신전 수석 재무관, 셈-신관, 미라 제작자, 모든 미라 제작소 감독관, (신전) 향 담당 신관, 진실된 목소리 프삼테크-멘티가 (바로) 두아무테프이다.”

 

요컨대, 카노푸스 단지의 화자(話者)는 네이스 여신이며 그녀의 원래 의무는 두아무테프를 보호하는 것인데 그녀는 이 수호신을 보호하는 임무가 궁극적으로는 이 단지 주인인 프삼테크-멘티를 보호하는 것이며 자신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텍스트를 통해 영원히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삼테크-멘티(Psamtek-menty)의 카노푸스 단지 몸체에 새긴 상형문자 텍스트. 후기왕조시대 제26 왕조(기원전 664-525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출처는 카이로(Cairo) 인근 멤피스(Memphis)입니다. 몸체 텍스트의 경우, 문자를 새긴 뒤 검은 색 안료를 흘려 넣었는데 2-3개 정도의 문자에는 안료가 소실되었습니다. 문자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문자 형태와 문법 역시 고대 이집트 텍스트의 일반적인 규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현대에 안료 등을 보완한 흔적은 없습니다.

 


2023년 5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개관하면 뚜껑과 몸체가 따로 보존된 이 유물을 박물관에서 직접 마주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뚜껑과 몸체는 아마 따로 전시될 것으로 봅니다.

 

한편, 카노푸스 단지 내부에 있어야 할 장기는 현대의 어느 시점에 제거되었으며 내부는 세척 및 보완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카노푸스 단지 하단부에는 제작 당시 혹은 그 이후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파손 흔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이 흥미로운 유물을 마주하실 때 이 작은 유물이 얼마나 복잡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카노푸스단지 #임세티 #하피 #두아무테프 #케베세누에프 #이시스 #네프티스 #네이스 #셀케트 #프삼테크멘티 (2022.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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