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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물 소개 010] 고대 이집트 의학 전문서 에베르스 파피루스(2)

by taeshik.kim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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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환 이집트학 박사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물 소개 010]
고대 이집트의 의학 전문서 『에베르스 파피루스』 – 두 번째 이야기: 고대의 전문 의학서

 

 

고대 이집트 의학의 뛰어난 면모를 가장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역시 의학 파피루스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학 파피루스는 수학 파피루스와 함께 고대 이집트의 실용서(manual) 장르에 포함됩니다. 

 

이들 실용서는 고대 이집트 문헌 형성사에서 지식의 취합 확산 전승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앞선 회차에서 제기한, 후기왕조 시대(기원전 664-332년) 이전에도 전문의가 존재했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도 상당히 신뢰할만한 정황증거를 제시해줍니다.

 

요컨대, 현존하는 의학 파피루스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고려할 때 파라오 시대에도 전문의들이 활약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총 17점의 의학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의학 파피루스는 중왕국 시대 제12 왕조 아멘엠하트 3세 치세(Amenemhat III: 기원전 1831-1786년)에 작성된 『카훈 파피루스』(Kahun Papyrus)입니다.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고고학자 플린더스 피트리(William Matthew Flinders Petrie: 1853-1942년)가 1889년 이집트 최대 담수호인 파이윰(Faiyum) 호수 근처에 위치한 고대 피라미드 도시 카훈(Kahun) 유적에서 발굴한 이 『카훈 파피루스』에는 산과(obstetrics) 부인과(gynecology) 수의학(veterinary medicine)과 관련된 치료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현대 의학과 유사한 접근법을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의학 파피루스로는 나중에 보다 자세히 살펴볼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Edwin Smith Surgical Papyrus)와 『에베르스 파피루스』(Ebers Papyrus)를 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런던 의학 파피루스』(London Medical Papyrus), 『베를린 파피루스 3038』(Berlin Papyrus 3038),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VI』(Papyrus Chester Beatty VI), 『칼스버그 파피루스 VIII』(Papyrus Carlsberg VIII) 등은 모두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에 해당하는 기원전 1300-1200년경에 작성된 의학문서들입니다. 

 

흥미롭게도 후기왕조 시대에 작성된 파피루스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로마 지배기(기원전 332년-기원후 395년)의 의학 파피루스로는 『비엔나 파피루스 6257』(Papyrus Vienna 6257) = 『크로코딜로폴리스 의학서』(Crocodilopolis Medical Book)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의학 파피루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두 의학서는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와 『에베르스 파피루스』입니다.

 

이들 두 파피루스 모두 신왕국시대 제18 왕조 아멘호텝 1세(기원전 1550-1525년) 치세 9년인 기원전 1559년 필사되었습니다만 텍스트의 문법적 특성과 특정 의학용어에 대한 주석 등을 고려할 때 원문 작성시기는 고왕국시대 제6 왕조(기원전 2345-2181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1862년 미국의 유물 수집가이자 딜러였던 에드윈 스미스(Edwin Smith: 1822-1906년)가 룩소르(Luxor)에서 현지 상인으로부터 2점의 파피루스를 입수하게 되는데 이들 파피루스는 아마도 테베 서안에 위치한 귀족 묘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입니다.

 

1896년 스미스는 이 중 한 점을 매물로 내놓았는데 3년 후 독일의 이집트학자 게오르크 마우리스 에베르스(Gerog Mauris Ebers: 1837-1898년)가 이 파피루스를 매입했습니다.

 

파피루스에 소유주 이름을 붙이는 관행에 따라 에드윈 스미스가 계속 소장하고 있던 파피루스는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라는 명칭으로, 에베르스가 입수한 파피루스는 『에베르스 파피루스』라는 명칭으로 각각 불리게 되었습니다. 


1906년 스미스가 사망하자 그의 여동생은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를 뉴욕 역사학회(New York Historical Society)에 기증했는데 지금은 미국 의학 아카데미(New York Academy of Medicine)에 소장되어 있으며 시카고 대학교 고대 근동 연구소(Oriental Institute of Chicago University) 설립자인 미국의 이집트학자 제임스 헨리 브리스티드(James Henry Breasted: 1865-1935년)에 의해 –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라는 용어를 맨 처음 쓴 학자입니다 – 1930년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에베르스 파피루스』(Ebers Papyrus),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 오늘날의 룩소르시에 해당하는 테베(Thebes) 서안 집단 묘역, 길이 202.3센티미터 x 높이 30센티미터, 라이프치히 대학교(Universität Leipzig) 도서관 소장.

 

한편, 『에베르스 파피루스』는 현재 라이프치히 대학교(Universität Leipzig) 도서관이 소유하는데 독일의 이집트학자 발터 브레친스키(Walter Wreszinski: 1880-1935년)에 의해 1913년 독일어로, 노르웨이의 신학자이자 의사, 그리고 아마추어 이집트학자였던 벤딕스 에벨(Bendix Ebbell: 1865-1941년)에 의해 1937년 영어로 각각 번역되었습니다.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는 총 길이가 4.68미터이며 총 12장 낱장을 이어 붙인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파피루스에는 주문이 단 하나밖에 발견되지 않는데 그것 역시 가망 없다고 판단되는 사례에 대한 조치였습니다.

 

이것은 주문이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에베르스 파피루스』보다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가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런 성격은 각종 외상에 대한 진단과 치료방법이 머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얼굴-목-쇄골-어깨 -가슴-척추에 이르는 순서에 따라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는 골절 탈골 외상 등 공사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과적 증상을 48개 증례로 나누어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증례는 임상적 설명에 이어 진단 예후 치료방법의 제시라는 정형화한 형식을 따릅니다.

 

일부 증례에서는 진단 시 맥박을 재어 심장 상태를 알아보는 방법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진단 후에는 의사가 그 심각성에 따라 환자의 예후를 “내가 해볼 수 있는 병” “내가 싸워볼 수 있는 병” “치료할 수 없는 병” 등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하여 선언하도록 조언하고 있습니다.


『에베르스 파피루스』는 현존하는 의학 파피루스 중 가장 유명한 의학서인 동시에 전체 길이가 20여 미터로 – 너비 20센티미터 높이 30센티미터 크기의 낱장 총 108장을 이어 붙여 제작되었습니다 – 의학 파피루스 중 가장 긴 파피루스이기도 합니다.

 

각 장에는 상형문자 흘림체 = 필기체인 신관문자(神官文字: hieratic)로 약 20-22열 정도의 텍스트가 쓰여 있으며 27페이지부터는 2장이 소실되어 바로 30페이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110페이지로 구성된 의학 전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대한 규모에 걸맞게 『에베르스 파피루스』는 일차의료(general practice) 혹은 가정의학(family medicine) 분과의 집대성 판이라 할 수 있는데 종기나 종양, 탈골 및 화상 등 같은 외상의 치료는 물론, 내과 피부과 치과 부인과 독성학(toxicology) 민간요법 등의 분과를 망라하는 총 875개에 달하는 치료법과 처방이 (특별한 체계나 기준 없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파피루스에는 또한 심장과 혈관 구조에 대한 의학이론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술되어 있는데 순환기계와 관련된 부분은 「심장의 서」(Book of the Heart)라는 별도의 장으로 구분됩니다.

 

고대 이집트 의사들은 모든 장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가 심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심장이 피 눈물 정액 소변을 비롯한 체액이 신체 내부를 끊임 없이 순환하도록 만들며 이들 체액이 제대로 순환하지 못해 신체 내부에서 그 균형이 깨졌을 때 신체적인 증상과 정신병이 모두 발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설명은 향후 그리스에서 주요 의학이론으로 부상하게 되는 체액 병리학(humeral pathology)과 4체액설(humourism)의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르스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 의학의 한계도 분명히 노정(露呈)하고 있습니다. 

 

일단 서문에 해당하는 증례 1번에서 저자는 파피루스가 지혜와 지식의 신 토트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따라서 수록된 주문들은 상당히 영험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p.Ebers, 1,7-10): 

 

“태양신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그를 그의 적들로부터 구하겠다[환자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하겠다]. 토트가 그[환자]의 인도자가 되리라. 그[토트]는 모든 언설[주문]을 주었고 치료법을 작성하였으며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를 따르는 박식한 현자들과 의료진에게 효험을 제공하였다. 신[토트]이 사랑하는 이를 그는 살리리라’ 하셨다.” 


아울러 비교적 합리적인 『에드윈 스미스 외과 파피루스』와는 달리 임상적 설명과 진단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 진단이 언급된 증례는 47개에 불과합니다 – 대부분의 증례에서는 이미 질환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졌다는 가정 아래 특정 치료법 혹은 처방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현대 의학과 같이 질병의 정의나 원인에 대한 탐구보다는 경험에 입각한 진단과 치료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이집트 의학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은 이 파피루스에는 정통 의학 이외에도 다양한 민간요법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들은 모기 파리 같은 해충, 그리고 쥐 뱀과 같은 유해동물을 집에서 쫓아내거나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매우 실용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에베르스 파피루스』에 수록된 증례 중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는 이후 여적을 통해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한편, 앞서 언급한 의학 파피루스들은 주로 신전의 문서 보관실에 보관되었으며 전국 각지의 의사들과 신관들은 필요할 때마다 신전을 방문하여 이들 파피루스를 열람하고 참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로마시대(기원전 27년-기원후 476년) 그리스 출신 내과의사였던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Claudius Galen: 129-199년경)는 그리스와 로마의 동료들이 고대 이집트의 오랜 행정수도였던 멤피스(Memphis)에 위치한 고대 신전의 문서 보관실에 소장되어 있는 문서들을 참조한다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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