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집과도 같아 끊임없이 수리해야 오래 사용하듯이 글 또한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재가공이 필요하다.
그 수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니, 첫째 논조의 교체가 있으니 이는 건물로 치면 토대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것이라, 이에는 위험이 동반한다.
기존 내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문제는 자칫 잘못 고치다간 그 토대 혹은 빌미가 된 원초의 생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물론 그 애초하는 생각 신념을 숨기고 싶다, 지워버리고 싶다 할 때야 이렇게 하겠지만, 문제는 내가 오늘의 생각 신념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있는 법이며, 그 과정이 때로는 무척이나 소중할 수도 있다.
예컨대 과거에는 A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것이 완전히 바뀌어 B가 되었을 적에, 자칫 A를 말살한 B는 느닷없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과거를 내가 책임지지 아니하는 무책임의 극치일 수도 있다.
이때 수리하는 전형의 방식이 추기 혹은 보유라 해서, 과거에 말한 내 신념 생각을 그대로 살려놓은 채 그 뒤에다가, 혹은 바뀐 주요한 부문마다, 저와 같은 방식으로 혹은 각주 같은 방식으로 "내가 옛날에는 이리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와 같이 바꾼다. 바꾸는 이유는 블라블라하다"라는 식으로 표식해 두는 방식이다.
이는 실상 식민지시대 일본인 연구자들이 애용하는 방식이고 지금도 일본 쪽에서는 많이 쓰는 수법이다.
다만 이 방식은 문제가 없지는 아니해서 추기 혹은 보유는 과거에 너무 옥죄인 느낌을 주고, 신상품이라는 느낌이 별로 없어 이 부문도 잘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시대 환경이 변할 수도 있다. 이런 부분들도 잘 감안해서 기존 내 글을 보수해야 한다.
내가 정작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보수는 바로 이 지점이다. 시대환경 변화. 이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될 수 있으니, 가장 대표적인 변화가 매체의 변화, 시간의 흐름이다.
가까운 곳에서 예를 들자면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이다. sns 애용자들은 이 기능을 자주 이용하는 편으로 알고 나 역시 그러한데, 그 과거의 오늘을 죽 훑어보면, 내 행적이 드러나기도 하는 내키지 않는 회상도 없지는 않겠지만, 내가 주목한 대목은 과거에 표출한 내 생각 중에서 지금도 요긴하고 쓸 만하다 하는 그런 글이 왜 없겠는가?
그런 글들은 갈무리를 해야 한다. 문제는 단순 저장이 아니라, 이미 시간이 흘렀으므로 오늘 시점에 맞는 그런 양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예컨대 도판이 없으면 도판도 새로 찡구고, 또 옛날 도판이 구리면 그것도 고화질도 교체해야 한다. 나아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 최대 단점이 검색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거니와, 개중에 나중에 다른 자리에 써먹을 재료로써 차기箚記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이럴 때는 다른 방식으로 아예 매체를 바꾸어 갈무리해야 한다.
나는 검색이라는 사정에서 블로그를 실은 애용하거니와, 그 블로그도 시대환경에 따라 아예 블로그 자체가 없어지는 그런 불상사도 있으므로, 여러 군데다 분산배치한다. 이른바 실록 저장 수법이라, 메인 블로그에도 옮기고, 또 다른 블로그에도 혹 다른 데가 없어질 때는 대비해서 분산하거니와 이렇게 해야 나중에 내가 쓴 글들을 내가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글 또한 이빨과 하등 다름 없어 치과를 끊임없이 다녀야 하듯이, 끊임없이 수리해야 한다.
글은 인쇄되는 순간 나를 떠났으므로 내 글이 아니다? 개소리다. 그건 아승끼 전세 겁에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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