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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글은 미다시와 첫 줄이 생명을 좌지우지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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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4월 4일 새벽, 피레네 산맥의 눈이 녹아 수량이 불어난 스페인의 에브로 강둑 위로 물에 흠뻑 젖은 두 남자가 차가운 물속에서 나와 기어 올라온다. 둘 다 미국인이다."

이제 펼치기 시작한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스페인 내전》(갈라파고스, 2018) 본문 첫 줄이다.

우리네 직업적 학문종사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글 못 쓴다.
 

Surrender of Republican soldiers in the Somosierra area, 1936


강렬하지 아니한가? 

이 한 줄은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논문이 글을 죽이고 말았다. (2018.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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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한때 혹은 제법 길게 영문학과 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스페인 내전은 《두 팔이여 안녕》으로 수렴하니, 기타 그에 더해 나는 20세기 신종 독재의 한 형태로서 파시즘을 떠올리곤 한다.

이 사건이 참전용사이기도 한 어네스트 헤밍웨이에겐 깊은 상흔으로 남았던 바, 그의 A farewell two arms가 스페인 내전을 독식했으니 문학작품 하나가 끼친 영향은 이리도 크다.

무솔리니 자서전과 히틀러 자서전을 독파한 나로선 프랑코 역시 혹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나 궁금하거니와 있다면 역본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영역본은 있으리라 본다. 
 

 
뭇솔리니를 추숭하여 그의 몰락 뒤에도 물경 30년을 철권통치한 프랑코가 각중에 궁금해진다.

파시즘이건 나치즘이건 결국 민족주읜데 파시즘이 고대로마제국, 나치즘이 고대 게르만족을 이상향으로 내세웠거니와 프랑코는 대체 무엇에 기대었는가?

코르테즈인가 인빈서블 아르마다인가? 이 책에 혹 내가 찾는 그 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손도 대지 아니했다. 그 대목이 혹 있다면 나는 만세를 부르리라.

저자는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소위 말하는 구미 선진국에서 해당 분야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러는 언제나 저널리스트 몫이다. 이 분야 전업적 작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리될 수가 없다.

왜?

어줍잖은 논문 때문이다. (2018.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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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양 하는 말이지만, 그 어떤 글이건 미다시 잘 뽑고 첫 줄이 강렬해야 살아남는다. 이건 틀이 있다고 간주하는 논문이라 해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럴 능력이 없는 자들이 매양 하는 말이 논문은 다른 글과 다르며 달라야 한다는 개소리를 일삼는다. 논문이라 해서 예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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