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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유쾌하기 힘든 다이쇼大正 노스탤지아Nostalgia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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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타현립역사박물관에서 요런 전시를 하는 모양이다.

 

<다이쇼 노스탤지어라...>

1. 학부 때 일본사 수업을 들었는데, 이 강사분이 메이지 시대에서 바로 쇼와 시대로 뛰어넘어 수업을 진행했더랬다. 그래서 왜 다이쇼 시대는 안 가르치냐며 물었더니, 지금의 일본을 만든 건 메이지와 쇼와 시대이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현대 일본인에게도 다이쇼시대(1912~1925년)은 그닥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니 '노스탤지어'나 '로망'이란 말을 썼을지도.


2. 우리로 치면 일제강점 초기 무단통치기와 3.1운동, 문화통치기에 걸친 이 시기는 일본에선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사람들의 어떤 열망이 들끓었던 때였다.

헌법수호운동, 보통선거법 제정 등이 이때 이루어졌고 수평사(부락민 차별 철폐 지향 단체), 신부인협회 같은 단체가 만들어져 활동했다. 야나기 무네요시, 가와이 간지로, 도미모토 겐키치, 구로다 다쓰아키 등 '민예파'가 일어선 것도 이때였다.

요 몇년간 한때 식당이건 술집이건 크게 유행했던 '모던', '경성' 스타일도 대개 이 시기의 소산이다.

어떻게 보면, 적어도 문화적인 면에서는 다이쇼 시대의 영향이 지금까지 동아시아에 드리워져 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3. 물론 그렇다고 이 시대가 마냥 긍정적이었던 건 결코 아니다. 특히 식민지 백성에겐 더더욱. 3.1운동(1919)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조선에서 자행된 헌병과 경찰의 폭력은 둘째치고, 저 포스터에 호외기사로 나오는 관동대진재(1923) 당시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도 이때의 일이었다. 그 유명한 악법 치안유지법이 통과되는 것도 1925년이다.

그러니 일본인들에게야 다이쇼 시대가 로망이자 노스탤지어일지 몰라도, 조선 사람의 후예인 우리에겐 아무래도 힘든 옛날일 수밖에는 없다.


4. 하여간 10여년간의 다이쇼 시대에 주목하는 전시라니 재밌어보이고,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大正ノスタルジア展」大分県立歴史博物館

https://abc0120.net/2023/04/24/103330/

 

「大正ノスタルジア展」大分県立歴史博物館 – 展覧会・博物館・美術館・記念館

「大正ノスタルジア展」大分県立歴史博物館

abc0120.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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