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해서다. 분해서다.
난 선천으로 알콜 분해효소가 없다. 이것도 유전인지 알 순 없지만, 선친이 그랬다. 이 양반은 콜라는 냄새만 맡아도 취했다. 그런 체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알 순 없지만, 암튼 난 그렇다.
아들놈은 좀 마시는 듯한데, 그래도 얼굴 벌개지는 걸 보니 저 놈도 집안 내력인가 싶어 안타까우면서 다행이라 여긴다.
이런 내가 온갖 술자리 다 불려가봤다. 젊은 시절엔 룸사롱도 자주 갔다. 별짓 다 해봤다.
넌알코홀릭한테 이런 생활은 고통이요 공포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거부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으니, 왜 그리 술을 강제로 못쳐먹여서 환장했는지 모르겠다.
마시지 못하는 술, 강제로 쳐먹이니 억지로 털어넣었다. 그러고선 뻗었다. 헤롱헤롱 이튿날까지 뻗어 정신을 못차렸다. 차라리 빨리 쳐먹고 빨리 게워내면 좋겠지만, 그러면 더 쳐먹였다.
마시면 는다?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아무리 쳐마셔도 안 느는 사람 의외로 많다. 이 사람들은 선천으로 알콜 분해효소를 생산할 수 없는 무능력자들이다.
이런 사람들한테 왜 그리 쳐먹이느냐?
어젯밤 간만에 만난 친구 반가워 술 마신다는데 안 맞출 수 없어 진토닉 딱 한 잔 시켜놓고선 두 시간 동안 홀짝홀짝 마셨다. 그 진토닉 한 잔에 난 새벽에 잠을 깼다. 속이 영 계속 거북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비워낸 지금도 여전히 개운치 못하다.
넌알코홀릭은 이렇다. 왜 이런 걸 모르냔 말이다. 요새야 갑질이니 해서 사정이 나아졌다지만, 제발 술 강제로 권하지 마라.
술 잘 쳐먹는다고, 폭탄주 스무잔 마시고 연구실 들어와서 내일 마감인 원고 쓴다고? 제발 지랄 좀 하지 마라. 그게 무슨 글이냐? 우라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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