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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남월국 왕묘가 일깨운 것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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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월왕묘 옥벽들



2007년 광동성 광주 남월국 문물 답사는 나한테는 여러 가지를 일깨운 기회였다.

남월국은 그 태동 시기, 태동 주체, 멸망 시점이 위만조선과 일란성 쌍둥이다.

남월국 창건주 조타는 산동성 출신으로 남월국에서 독립해 남월국을 세웠다. 현지 민족과의 복합세력이 구축한 왕조로 100년간 지속하다가 기원전 111년인가 한 무제에게 멸망당하고 그 땅에는 7군이 설치되었다.

위만조선 역시 이와 판박이라, 아마도 북경 일대 출신일 가능성이 많은 위만이 기자조선으로 망명해 처음에는 그 서쪽 방 100리를 분봉받았다가 이내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위만조선을 열었으니,

그러다가 역시 100년만에 한 무제에게 망하고는
그 땅에 4군이 설치되었다.



남월왕묘 옥 장식



남월국을 정벌한 장수가 그대로 위만조선 정벌군 상층부를 형성했으니, 이러고도 남월국과 위만조선은 쌍둥이라 하지 않겠는가?

남월국 문제 무덤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 현지에서는 그 전시관이 건립되어 있으니, 그 문패에는 '서한남월왕묘박물관'이라 달았다.
빌어먹을 남월왕묘면 남월왕묘지 서한남월왕은 또 무슨 개뼉다귀인가?

내가 이에서 격발한 바는, 사진으로 첨부하듯이 남월국 왕묘는 온통 중국풍이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동시대 서한풍이다.

저 옥의玉衣만 해도 서한 전통이요, 옥벽을 비롯한 각종 옥제품은 틀림없이 중원에서 수입한 것들이거나 그것을 모방한 것이다.



남월왕묘 옥의



내가 이에서 배운 것은

서한시대에 해당하는 유적 유물과

서한시대의 유적 유물은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한시대 중심부, 예컨대 낙양이나 서안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유물 건물지가 나온다 해서 그것이 곧 서한시대의 유적 유물이라는 증거는 결코 아니다.

이걸 구별하는 방법을 나는 배웠다.





저것은 서한시대에 해당하는 남월국이라는 왕조가 소화한 유물 유적인 것이다.

이는 무령왕릉이나 송산리 6호분도 똑같다.

그것이 동시대 중국을 그대로 따온 무덤 양식이라 해서 그것을 우리는 양조 무덤이라 하지 않는다.

백제 무덤이다.

양조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 유물과

그것이 양조 유물 유적이라는 말은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다. (2017. 6. 20)






***


이를 망각하는 놈들이 의외로 이 땅 역사를 연구한다는 자들한테서 팽배하다.

알량한 지식 내세워 이것이 중국 유물이요 중국 유적이라 해서 저 둘을 혼동하는 자가 너무 많다.

한심하기가 이를 데 없는 놈들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대목이 평양 일대 이른바 낙랑 유적과 요동 요서일대 청동기시대 이래 유적 유물이다.

중국 발표 믿으면 안 된다. 그들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다 의심하고 다 새로 봐야 한다.

그 결론은 중국과 같을 수도 있다.

다만 의심하라!

깡그리 의심하라.

의심하지 아니하면 남월국은 서한 왕조 일개 지방정권으로 형해화한다.

이 짓거리에 동참하려는가?

여차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

저 남월왕묘를 낙랑태수 무덤으로 봐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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