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집안 고문서 가운데 어느 땅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1767(영조43)년 5칸 짜리 초가와 3칸 짜리 마굿간, 3칸 짜리 초가집이 있는 200평쯤 되는 집터와 집 주위 800평쯤 되는 대밭과 그 주변에 산까지 있는 땅을 15냥에 구입한 문서였다.
가친께 여쭈니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밤새 기억이 났는지 새벽에 전화를 주셨다. 하남정사 아래 성재 기삼연 선생 생가 땅이라고 하신다. 8대조부 아우가 분가할 때 그 땅을 주었다고 하신다.
의병 독립운동을 하면서 그 집터와 대밭과 산은 모두 남의 땅이 되었다.
최근 문서들을 정리하는 건 구순 노인 총기가 어제 오늘 다르기 때문이다.
김태식 단장이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백과사전 한 질이 사라진다고 했던 말을 실감 중이다.
반응형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카테고리의 다른 글
文을 너무 숭상한 조선 (0) | 2020.09.25 |
---|---|
[9월은 재산세 납부] 조세 독촉[催租] (0) | 2020.09.25 |
야경夜警 돌 때 치는 악기 딱따기 (0) | 2020.09.22 |
국화꽃을 빌리다 (0) | 2020.09.21 |
며느리한테 증여하는 이유 (0) | 2020.09.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