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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단청 박락됐다고 호들갑떨지 마라"

by 한량 taeshik.kim 2020. 12. 4.

숭례문, 일명 남대문 

 

1699년(숙종 25)에 갓 지은 영월寧越 장릉莊陵 정자각丁字閣이 말썽을 부렸습니다. 단청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틈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조정의 반응을 보십시오. 특히 최석정의 말에 따르면 기울거나 비가 새는 것이 아니라면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인견하는 자리에서 예조 참판 오도일(吳道一)이 아뢴 내용은,

“강원 감사 유지발(柳之發)이 ‘장릉(莊陵) 정자각 앞뒤 기둥이 마르면서 칠이 떨어지는 곳도 있고 서남쪽 바람막이 덧댄 판자의 결합 부위도 틈이 벌어진 곳이 있습니다.’라고 본조(예조)에 치계(馳啓)하였습니다. 그런데 손상된 곳은 대체로 서까래로 목재가 새로 마르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화급하게 고칠 일은 아니니 형편을 보아 고치면 적절할 듯합니다. 대신에게 물어서 처리하면 어떻겠습니까?”

 

조선왕릉 정자각. 귀신이 사는 집이다. 



라는 것이었는데, 좌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아뢰기를

“추운 겨울에 짓느라 재목이 다 마르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이는 기울었다거나 비가 새는 것에 비교할 일이 아니니 가을이 되거든 그 형편을 살펴서 고치면 좋을 듯합니다.”

라고 하였다. 상(숙종)이 이르기를

“그 장계를 보면 화급한 일은 아니니 가을이 되면 거행하라.”

하였다.

○ 引見時, 禮曹參判吳道一所啓, 莊陵丁字閣前後柱木, 或有乾燥而漆落處, 西南風遮付板接聯處, 亦有罅隙, 江原監司柳之發, 以此馳啓下于本曹, 而所傷之處, 蓋緣材木新乾, 以致如此, 非急時可改之事, 觀勢修改, 似爲得宜, 下詢于大臣而處之, 何如? 左議政崔錫鼎曰, 凍節成造, 材木不能盡乾而然也, 此非如傾側雨漏之比, 待秋後察其形止而修改, 似宜矣。上曰, 觀其狀啓, 似非時急之事, 待秋擧行, 可也。《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숙종 25년 5월 20일 (무자)


(2013. 12. 4)

***

숭례문 복원이 부실이라 해서, 특히 그 단청이 박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해서 당시 문화재청장까지 나서서 지랄발광을 떨어대며 문화재는 적폐들 온상이며 이참에 확 쓸어버려야 한다며 이른바 정풍운동을 일으킬 무렵이다.

단청은 전통방식으로 한다 했지만 결국 뼁끼칠로 드러났다. 이것도 잘못 저것도 잘못, 심지어 수제로 구웠다는 기와까지 실은 공장제라는 설레발까지 등장하고는 또 설혹 그것이 수제라 해도 동파된다는 설레발까지 나오기도 했다.

 

정자각. 단청은 데코레이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원전급비리라는 말까지 등장했으나 결국 드러난 부실은 단청뿐이었으니 그 와중에 느닷없는 광화문 복원 문제로 옮아가 그 대목장이 다른 소나무를 쓴 일이 문제가 된 정도였다.

단청은 데코레이션이라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이 방식으로 하기로 했는데 엉뚱 방식으로 한 일은 분명 약속위반이며 그에 따른 처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심대한 사안인가는 별개거니와 뼁끼칠로 온 나라를 들었다놨다 하는 패악질이 있었다. 그 와중에 전통시대엔 나무를 충분히 건조해서 써서 균열도 없고 송진도 나오지 않았다는 개소리가 난무했다.

 

문제가 된 숭례문 단청



소나무는 충분히 말린 적도 없고 송진을 뺀 적도 없다. 그대로 생가지 갖다 올렸다. 그런 여유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사람이 일상으로 거주하지도 않는 귀신이 사는 집인데 뭣하러 송진을 빼고 충분히 말리고 지랄한단 말인가? 광화문에, 송례문이 사람이 산단 말인가? 

저에 보이지 않는가? 나무가 말라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단청 박락이 일어난다고?

 

"추운 겨울에 짓느라 재목이 다 마르지 않아 그런 것입니다. 이는 기울었다거나 비가 새는 것에 비교할 일이 아니니 가을이 되거든 그 형편을 살펴서 고치면 좋을 듯합니다" 

 

애초에는 박락됐다 해서 난리를 친 숭례문 단청



그렇다 해서 문화재현장이 깨끗하단 말은 할 수 없고, 적지 않은 문제들을 온축했음은 분명하나 없는 사실을 조작하는 행위야말로 중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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