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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대한민국의 50-70년대 (2): 해방직후 문맹률

by 초야잠필 202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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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일제시대를 어떻게 경과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그 시대의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해방직후 문맹률이다. 

경제성장률 등 지표는 "한국의 근대화"의 지표가 될 수 없다. 

한국인이 제국의 2등시민으로 격하되고 일본인이 한반도 안에서도 절대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보다는 두 가지 지표를 봐야 한다. 

첫째는 문맹률
두 번째는 토지소유관계다. 

이 두 가지가 각종 성장률 지표보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데 있어 훨씬 정확하다. 

그 중에 첫 번째 문맹률을 보자. 

해방직후 한국인 문맹률이 얼마였을 것 같은가? 

일제시대가 시작되고도 20년이 지난 1930년 시점의 조선인 전체 문맹률은 73.95%였다. 


https://db.history.go.kr/download.do?levelId=kn_051_0040&fileName=kn_051_0040.pdf 


이러한 상황은 일제시대가 끝난 시점에서도 별 차이가 없어 광복직후 남한 지역 12살 이상 인구에서 문맹률은 78%였다고 한다. 


이달의 기록

문맹퇴치운동은 글을 읽거나 쓰지도 못하는 사람인 문맹자들에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치는 모든 운동이다. 이번 달에는 ‘문맹국민 완전 퇴치 및 기호식 선거방법 일소(一掃)’를 표방

theme.archives.go.kr

https://www.korea.kr/news/pressReleaseView.do?newsId=155734042 

기록으로 만나는 “1950년대 문맹퇴치운동”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4월 「이달의 기록」으로 “1950년대 문맹퇴치운동” 관련 기록물을 선정하고, 1일부터 나라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 온라인서비스를 실시한다. 이번에 제공하

www.korea.kr



말하자면 일제시대를 경과한 직후에도 12살 이상 한국인 중 4명 중 3명은 글자를 못 읽었다는 것이다. 

농담 같다면, 우리나라에서 공개한 자료 중 "한국전쟁 인민군 포로신문보고서"가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개한 것으로 아마 인터넷을 뒤져보면 나올텐데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따로 링크는 걸지 않겠다. 

이 자료를 보면,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인민군 양쪽 모두 학력 수준이 비슷했을 것이라 본다면, 그 당시 양쪽 군대는 "문맹군"이었다고 보아도 된다.

소학교 졸업생도 거의 없고 대부분 소학 교육 2-3년 정도가 주류이며 아예 학교도 안 가본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교육 수준으로는 애초에 경제성장률이 몇 프로, 일제시대에 근대화 어쩌고 하는 이야기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말이다. 

글자를 못 읽는 사람들에게 열차 선로를 깔아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애초에 그 열차 선로 자체가 문맹자를 배제한 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일제시대 조선반도의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아프리카 국가에게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시대에 이런 저런 투자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소리하고 똑같은 소리다. 


한국전쟁 개전 초, 서울로 들어오는 인민군. 이 중 태반은 문맹이다.

 
 
*** 편집자注 *** 

 
이 문맹율 문제를 역사를 한다는 자들이 매양 쉽사리 간과한다. 문맹율은 그만큼 역사를 바라보는 가늠자다.

해방 당시 성인 국민 10명 중 8명이 까막눈이었다. 이걸 끝장내고 까막눈을 소수로 만든 시대가 대한민국이다. 

단군조선 이래 이런 날은 없었다. 
 
이 문맹율에 내가 매양 예민한 까닭은 엄마 아부지가 까막눈이었고 그런 까닭에 매양 내가 아부지를 대신해 지금은 죽고 없는 병역기피자 형님한테 편지를 썼고, 그 답장을 매양 내가 읽어드렸으며 나아가 그것이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신동훈 선생이 이 문제를 정확히 지적한다. 지금 비판을 쏟아붓는 총구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겨냥하지만, 실상 더 심각한 데는 그것을 비판하는 놈들이다. 이른바 민족주의 역사학을 겨냥하는 이 놈들이야말로 실은 역사의 배신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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