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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댐 제방 속으로 기어 들어간 울산 약사동 제방 유적 전시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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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약사동제방이라 해서 신라가 6~7세기 무렵 쌓은 저수지 댐이다. 앞으로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므로 거기로 그런 내부 이야기는 미루기로 하고, 저 사진 각도를 설명하면 
 
첫 2장은 안쪽에서, 그러니깐 시내 상류 쪽에서 바라본 것이며, 세번째 사진은 하류에서 상류로 바라본다. 
 
저 앞짝 산이 해발 200미터 정도 되는 함월산含月山이라 하는데, 그 함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약사천藥泗川이라는 동천東川 지류가 흘러내리는 계곡 양쪽을 막아서 만든 것이 약사동 제방이다.

물론 약사동 제방이라는 말은 저것을 발굴하고 나서 최근에서 붙인 명칭이며, 그 옛날 명칭은 모른다. 
 
굼뱅이처럼 턱하니 계곡을 바로 막고 선 친구가 제방, 댐이다. 발굴 이전에는 계곡 한쪽 절반 정도가 남아있었고, 발굴조사를 마치고, 현지 보존해라!! 이렇게 문화재위원들이 땡깡부리니, LH가 국민호구 아닌가? 까라는 대로 까는 수밖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어서 상납했다! 어디다? 국가에다 상납했지만, 국가가 한가롭게 저런 걸 관리하겠는가? 울산시에 던졌다.

이를 기부채납이라 하지만 말이 좋아 기부지 삥뜯기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지금은? 
 

 
 
요롷게 울산시에서 박물관으로 등록해서 관리한다. 
 
그러면 전시관, 즉 박물관은 어디에 있는가? 저 댐둑 안에 들어가 있다. 땅 속에 묻은 지하 박물관이다. 
 
저런 양식이 외국에서는 드물지는 않는데, 저런 식으로 지하로 기어들어가서 박물관은 만든 사례는 국내에서는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혹 중국을 들락거린 사람들은 알리라. 어디에서 많이 보던 디자인이라는 걸. 저 박물관 어느 업체서 디자인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삼성퇴박물관 그것을 우라까이했다.

우라까이라 해서 기분 나쁘다고? 왜 기분 나뻐? 좋은 디자인은 얼마든 우리도 갖다 쓰야 한다. 

그 요상한 황금가면으로 유명한 삼성퇴가 저런 식으로 둔덕으로 덮은 지하박물관이다. 딱 고거다. 

디자인 업체가 몰랐다면, 저기 관여한 틀림없는 문화재위원이니 하는 친구들이 지가 어디서 본 것이라고 이런 게 좋다고 틀림없이 들이밀어 넣었을 것이다. 
 

 
요기로 들어가면 박물관이다. 

그렇담 내부는? 
 

 
요롷다. 한쪽 비름빡에는 전사라 해서 애초 발굴 결과 드러난 댐벽면을 한꺼풀 뜯어다가 고대로 본드칠해서 고정했다. 

간단하다. 나무 둥치를 톱질해서 그 단면을 보여주는 방식이라 생각하면 된다. 

저 방식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아니나 다를까 서진문화유산연구원 김선덕 소장한테 전화를 걸어 이것이 승님 거요 했더니 그렇댄다. 

저 전사 방식 보여주기는 실은 구식이다. 다만 구식이나 현실감은 난다. 요새는?

뭘 어케해? 볼륨감 도드라지게 하는 사진으로 촬영해서 고대로 비름빡에 붙여놓는다. 실제는 평면인데 보는 사람은 볼륨감을 느낀다. 

이 방식 역시 중국에서 근자 활발히 시도한다. 나는 10년전 쯤 마침 개관 준비 중이던 절강대학박물관에서 돈황석굴을 저런 방식으로 실물 크기 복원한 전시실을 구경하고는 침을 질질 흘린 기억이 있다. 
 

 
 
갔으니 기념으로 박아얄 거 아닌가? 가뜩이나 시염도 깎지 못한 상태로 인상 기리며 찍어봤다. 
 

 
내친 김에 조사당시 모습을 보면 이렇다.

저 중에 지도는 아래서 다시 보자.

왜냐면 LH로서는 재수 옴 붙은 현장이기 때문이다. 
 

 
단면 보면 이렇다. 아래 시커먼 층을 실트 층이라 해서 진흙 성분 다대한데 이걸 뭐 유별난 기술이나 되는양 침소봉대하는데 촌놈들이 아니라서 그렇다. 촌놈들은 안다.
 
저 흙 논농사 논바닥 흙이다. 

그 위에 조개깔고, 또 나무 풀 이파리 쌓고 해서 콘크리트질했다. 부엽공법? 이제 새삼스런 기술 아니니 그만 떠들어라. 
 

 
 
이 지도를 보면 저 약사동제방전시관이 얼마나 재수없는 괴물인지 안다. 연두색이 혁신도시 구간. 

저 혁신도시 건설하다가 지랄!!! 저게 턱하니 걸렸네? 

시행사로는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뛸 일이겠는가? 그래서 LH에서는 애초 저걸 왜 보존하냐 길길이 반대했다. 

우린 못한다 나자빠지면서 배째라 하고선 문화재청에 격렬히 항의했다. 

그때 나캉 지금은 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간 당시 문화일보 기자 최영창이 작당해서 기사 썼다!!!

그걸로 끝났다. 현지 보존은 그 언론보도로 끝나버렸다. 

위선 이 자리에서는 맛배기로 약사동제방이 어떤 곳인지를 현장을 중심으로, 사진 중심으로 도입부를 삼아 소개했다. 

우리는 왜 이 현장을 주목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왜? 를 묻는 순간 우리는 개돼지도 3년만 교육하면 하는 고고학을 박차고 고고철학으로 뛰어든다. 

고고학은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고고철학으로 가는 디딤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예서 고고학은 비로소 문화재학, 아 1년 뒤에는 유산학이 발생하는 것이다. 

묻는다. 너희는 고고학을 할 것인가 유산학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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