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시대 이후, 특히 唐의 시대가 개막하면서 도교가 흥성하게 되니,
도교에서는 노자老子를 교조처럼 받들지만 문제는 그들의 신학과 노자가 남겼다는 오천언五千言 《노자老子》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었다.
실제상의 노자와 도교에서 교주로 포섭한 노자는 그만큼 거리가 몇 광년이나 되었거니와, 이리하여 그들이 쟁투하는 다른 사상적 흐름, 특히 불교에서는 계속 조롱을 받았다.
불교가 도교를 공박한 주된 논거 중 하나가
"너희가 노자의 이름을 팔지만, 정작 노자에는 너희가 말하는 신선이니 하는 따위 없다"
는 것이었다.
으흠....
석가모니 부처가 다시 태어나 그런 도교를 공격하는 불교를 보았다면 기절초풍해서 자발적인 반열반에 들고 말았으리라.
불교는 기원전후 무렵 이른바 대승불교 운동이 일면서 인간 중의 최고 깨달은 자라고 할 수 있는 부처는 이미 각종 괴력을 부리는 절대 神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예수가 한반도에 재림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눈쌀 찌푸리다말고는 환생한 일을 후회하고 말리라. (2013. 6. 2)
***
도교가 신봉하는 궁극의 가치인 道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말을 걸 수도 없다 해서 그것을 구상화할 수는 없다 해서 도교에서는 조상造像을 만들지 않는다는 도홍경陶弘景의 증언이 있지만, 이는 거짓말이거나 무식의 발로다. 도홍경 시대 이전에 이미 도교도들은 불교도들 감발에 도상을 많이 만들고 있었다.
암튼 이처럼 초창기 도교와 쟁패한 불교가 도교를 공격한 논거 중 하나는 니들은 노자를 팔아묵는데 노자는 신선을 얘기하지 않았다 는 것이었다.
하긴 노자 어디를 봐도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 경지를 신선이라 하지 않았다.
이 틈바구니를 어찌 돌파했는지는 나중에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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