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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떠나는 두 노땅 학예사를 전송하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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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날인 어제 그네들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저들이 각기 swan song 비스무리한 노래를 했으니, 각기 30년가량 몸담은 공직을 한 사람은 완전히 떠나면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에 즈음한 공로연수를 돌입하면서 적은 글이었으니, 사적으로는 내가 존경해마지 않은 형들인 그네들 글을 훑으면서, 이런저런 상념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비슷한 처지에 처한 같은 직업군 다른 이들한테는 경이로움을 유발했을 수도 있고, 혹은 꺼져가던 열정을 다시금 불태우는 작은 수류탄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혹 또 어떤 이들한테는 좌절을 맛보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로대
그와는 다른 길을 걸은 나 같은 사람, 특히 기자로서 비교적 오랫동안 그네들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시종일관

존경

딱 하나였다고 고백해 둔다.

저들은 같은 공직이라 해도 그 행정 최말단에 위치하니, 인체로 치면 모세혈관에 해당하는 기초자지단체 공직이라, 중앙부처, 혹은 광역자치단체 비슷한 업종에 종사한 사람들과는 또 다른 삶을 부대꼈으니, 그런 일을 30년이나 하면서 저들이라고 왜 좌절 혹은 무력감이 없었겠는가?

이채경


그럼에도 적어도 내가 지켜본 그네들은 첫째 시종일관 그네들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둘째 이른바 흔들려서는 안 되는 원칙을 양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힘들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오늘 지금의 자리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초지자체 학예연구사는 무엇인가?

가장 간단히 정리한 사람이 저들이라, 저 중 공로연수 들어가는 원주시청 전 원주시립박물관장 박종수는 "그 지역의 문화재청장"이라 했는가 하면, 어제자로 공직에서 완전히 제대하고 순수민간인으로 돌아간 이채경 경주시청 전 문화재과장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 질렀으니

이것이야말로 저네들이 처한 애환, 혹은 자부심을 그대로 대변한다 하겠다.

기초지자체 학예직은 광역지차체의 그것과는 또 달라, 수행하는 업무가 대체로 초인을 방불해서 작금 정부조직 중 문화재청이 수행하는 모든 일을 최일선에서 수행한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열악한 조직 예산에서 말미암는다.

전담 인원은 태부족이며, 수행하는 업무는 죽은 천연기념물 조류 수거까지 있으니, 이는 실은 자부심보다는 그 원시성을 말해준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모른 것이 없어야 한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잡학사전이 되어야 했으니, 학예사라 하니깐 해당 지역 역사문화는 꿰차고 있어야 하나, 사람 능력이 어찌 그런가?

이채경의 말을 빌리면 나중에는 아무렇게나 말해도 그게 통하더란다.

박종수


저들은 요즘 같은 분야에 입문하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길을 걸은 사람들이다. 그 척박한 풍토에서 때로는 타협했을 것이로대, 내가 아는 저들은 대원칙을 양보한 적이 없으며, 그래서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으며, 그래도 말년에는 학예직으로는 과장 혹은 과장급 보직으로 공직을 무난히 마무리하는 형들이다.

편의상 무난히라 했지만, 나는 저들이야말로 전인全人으로 보며, 철인으로 본다.

누가 문화재 전문가인가?

저들이야말로, 저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문화재 전문가라 하지 않겠는가?

문화재를 구성하는 한 귀퉁이 부여잡고는 그거 좀 안다고 내가 문화재 전문가라 거덜먹대는 자들을 참말로 참혹케 하는 진정한 문화재전문가들이다.

2021년 7월 1일
만 30년 10개월 간의 공무원 신분이 어제로 끝나고 오늘부터 완전한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왔다.
길다면 긴 세월이었는데 돌이켜보니 후다닥 번개같이 지나가 버린 것 같다.

전후좌우, 상하안팎, 사면팔방으로 참으로 싸우기도 진절머리 나게 많이도 싸웠지만, 반면에 이해해주고 힘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의 은혜도 입었다.

원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고집스럽게 버티고 밀고 나갔다.

또한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는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끈질기게 원칙을 고수하며 밀고 나갔기에 오늘날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과 경주읍성복원정비사업 등을 시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였다고 자부한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못다 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것은 후배들이 더욱 잘 해줄 것으로 믿는다.

기초지자체에서는 드물게도 학예연구관으로 승진하여 마지막 3년 간을 문화재과장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30년이 넘는 공직 생활에서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지난 연초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로 연수를 시작할 때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더니 모든 게 다 지나간 오늘에야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이제부터는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바빠서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하면서 살아야겠다.

그동안 안팎으로 응원해주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상 이채경)

이채경(왼)과 박종수(가운데). 양윤식은 왜? 


안녕하세요!
다들 무탈하시지요!
지난해 12월 26일 페북을 떠난 이후 오늘 첫 인사 드립니다.
2021년 7월 1일, 오늘은 의미있는 날입니다. 오늘부터 준 백수가 되었으니까요.

7월 1일 뭐할까!

여러 가지 일이 떠올랐지만 선친이 계신 동악을 찾았습니다.

28년 전 시작한 공직을 대과없이 마무리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처음 입직할때 선친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정직해라!
당당해라!
밥값해라!

28년동안 선친의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았는데, 선친께서 꾸지람을 하실지 칭찬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상 박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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