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주를 "중국"에게 빼앗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주는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중국에게 빼앗긴 것은 아니다.
만주는 청동기시대 이래 집요하게 남방으로의 진출을 꾀하던 읍루-물길-말갈-여진으로 이어지는 계통이 경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들은 쉬지 않고 남쪽으로 진출을 모색했고, 이 지역에 정치적 공백이 발생할 때마다 집요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은 만주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둔 후 아예 중국 본토까지 먹어치운 후 뒤집기 한판으로 그 전체 판도를 고스란이 한족에게 인계하고 역사상 자신들의 임무를 마쳤기 때문에 우리는 만주를 중국에 뺏겼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청나라 건국 때까지의 역사를 보면 만주는 이들이 결국 차지한 것이다.
각설하고,
고구려 연변장성을 보면 이들에 대한 경계심이 고려나 조선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남하하는 말갈계를 저지하는 고구려의 역할이 전혀 검토되지 않고 있는데, 사실 읍루는 삼국지 동이전의 세계에서도 예맥계인 옥저를 계속 압박하고 있었고 고구려 후신인 고려시대에도 남쪽으로 계속 진출하여 양자는 계속 충돌했다.
이러한 형태의 대립이 고구려 때만 없었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속말말갈과 백산말갈이 고구려에 "부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전체 말갈이 고구려에 순순히 복종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속말말갈과 백산 말갈은 고구려의 "장성 안"에 들어와 살던 종족일 뿐이고 그 장성 바깥에는 고구려에 적대적인 말갈족들이 마치 조선시대 여진족처럼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로서는 이들을 어떻게든 통제해야 했을 것이고, 그러한 흐름은 발해에서도 보인다.
발해는 주체 세력이 고구려인들과 함께 고구려시대, 내지로 옮겨 살던 말갈족이 함께 세운 나라이다. 이들의 최우선적으로 방어해야 했을 대상은 당나라도, 신라도 아니고 새외의 말갈족이었다고 본다.
발해 행정구역에 붙여진 이름을 보면 이들의 생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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