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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명함을 정리하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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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책상 이곳저곳 나뒹구는 명함들이 걸리적거려 청산에 들어간다.

한뭉태기 되는데 내 명함도 있다.

미처 입력하지 못한 명함들이라 대개 어쩌다 스치다만 인연들이라 앞으로 내가 얼마를 살지 알지 못하나 경험칙상 다시 만날 일이 없거나 다시 만난대도 다시 명함을 교환해야 할 사람이 대부분이란 사실 잘 안다.

하나씩 입력하는데 명함도 층위가 있어 언제 어떤 기관과 점심 간담회가 있었던듯 그쪽 기관 오야붕 이하 직원들 명함이 우수수하다.

향후 추가의 인연이 거의 없을 사람들 명함을 입력하는 오직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나한테 명함을 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나라고 저들에게 무에 별것이 있겠는가? 스친 인연일 뿐이다.


그러다 이채로운 명함 한장 튀어나오는데 보니 아일랜드 슬라이고 어느 호텔이라

쓰레기통에 그냥 던져버리기엔 아까워 하나하나 입력해 본다.

이번 아일랜드 초고속 주파 주마간산 여행 중 슬라이고에 투숙한 아름다운 호텔이다.

예이츠 외가라, 그걸 빌미로 그의 흔적 더듬어 보겠다 들른 곳이어니와

내가 언제 슬라이고를 다시 갈 날 있을지 모르거니와

더구나 그런 날이 온대도 저 호텔이 여전하리란 보장은 없으나 추억 편린 하나 붙잡고픈 마음이 없지는 아니해 내 다시 가면 다시 찾으마 하는 심정으로 입력해 본다.

늙었나 보다.

명함 뭉치로 오만 잡생각이 떠오르니 말이다.

*** 

2년간의 해직을 청산하고, 이 공장에 재입사했을 적에 
그러고는 적폐경영진이 마침내 물러나고 그에 이어 단행된 인사에서 문화부장이 되었을 적에 
명함에다가 뭐라 파고 다닐까 조금은 고민했더랬다. 

한때는, 아니, 해직 전까지 그 대부분의 기간에는 나는 연합뉴스 기자 하나로 족하다 생각했으며 
실제 그리 명함 파고 다니기도 했지만, 

조금 지나 문화부장이란 문구를 집어넣기는 했다만, 이야 스쳐가는 자리일 뿐이라
또 어떤 명함을 새로 파얄지 모르겠다. 

지금도 서재 한쪽 귀퉁이에는 해직기간 임시로 파고 다닌 무슨 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가라 명함 뭉치가 있는데 
차라리 그걸 뿌리고 다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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