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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추녀, 못생긴 여자가 많은 강화 전등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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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2011.06.30 11:16:37 글이다.)  

 

태풍이 몰고온 비가 후려치는 전등사

 

태풍 ‘메아리’가 한반도에 상륙한다고 난리를 친 바로 그날, 그러니까 2011년 6월26일 일요일, 나는 강화도를 답사 중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인 듯 싶었지만 그런 대로 운치가 있었으니, 폭풍우가 휘몰아 칠 땐 사실 조선왕릉이나 경주의 대릉원 같은 델 가야 제격이다.

내 기억으론 이날 오전 장마전선과 결합한 태풍은 위력이 대단했지만, 서해상을 따라 북상해 이날 오후 혹은 저녁이면 옹진반도 부근을 통해 북한으로 상륙한다던 태풍은 이내 온데간데없어지고, 하늘은 청명하단 할 수는 없지만, 공활한 호천昊天과도 엇비슷한 하늘이 펼쳐졌다. 

먹구름에 가까운 구름 색깔을 솜사탕 색으로 바꾼다면야 영락없는 가을 같은 하늘이 펼쳐진 것이다.

이날 오전, 기상청에서는 전국 각지에 호우 피해 경보를 내리고, 그에 덩달아 공무원들도 비상대기를 했다는 뉴스 속보가 쏟아졌지만, 이날 오전 기상청을 통해 배포된 태풍 위성사진을 보니 이미 이 단계에서 태풍은 열대성저기압으로 변질했으니, 그럼에도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드는지 못내 나는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혹여 매번 얻어터지는 기상청이 지레 겁을 먹고 하는 일이라면 나는 이해하련다) 

위성사진을 보아 하니 태풍은 이미 눈깔을 잃어버렸으며, 그것이 몰고 다닌 구름은 퍼질러질대로 퍼질러졌으니 영락없는 열대성저기압이었다. 함에도 왜 제주해상을 통과해 서해상을 따라 옹진반도 부근으로 태풍이 상륙한다는지 나로서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기상예보가, 그것도 기상청을 통해 연발탄을 쏘아댔다.

이런 내 의구심은 정오를 지나면서 하늘을 덮은 먹구름 속도만큼이나 신속하게 펼쳐진 희멀건 하늘이 떨쳐주었다. 그랬다. 태풍은 그 이전에 열대성저기압으로 약화해 비실이가 되어 마지막 발악을 일삼다 물러난 것이다.

전등사를 찾았을 때는 태풍이 마지막 발악을 하던 때라, 비가 몹시도 내리쳤다.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빗방울이 렌즈 마개를 때리는 성가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비 오는 날은 운치가 있다.

이 전등사는 전통사찰이라면 으레 있어야 하는 일주문이 없고, 나아가 사찰 본체로 들어서는 출입시설이라고 할 만한 천왕문天王門도 없다. 

 



일주문은 그런 구실이 전등사를 마치 이른바 포곡식抱谷式 성곽처럼 감싼 삼랑성三郞城, 일명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는 城郭에 난 문이 대신한다고 할 수 있으니, 나는 종해루宗海樓라는 누각식 성문을 통해 사찰 경내로 들어갔다. 

이태 전에 경내 일부를 한울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한 적이 있으니, 나로서는 그때 이후 다시 방문이었다.

이 전등사 주요 전각 배치와 관련해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이 펴낸 《한국의 사찰上》(2004.10)에서는 이렇게 정리한다.  

전등사의 가람배치는 전형적 산지가람의 형식을 이룬다. 南向한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요사가 있고, 우측에 향로전을 비롯하여 보물 제179호인 약사전, 명부전이 나란히 있고 명부전 앞쪽에 종각과 적묵당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대웅보전 우측 뒤쪽으로 한층 높은 곳에 삼성각이 위치하고 있으며 대웅보전 앞쪽에는 경내로 들어오는 사문을 겸한 중층의 누각인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대조루가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적묵당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장사각藏史閣과 선원각璿源閣의 옛 터가 있다.(52쪽)

강화도 남쪽을 떡 하니 버티고 선 마니산 한 줄기가 흘러내리다 형성한 정족산鼎足山 기슭에 자리잡은 전등사는 위 기술처럼 그 본체 격인 대웅보전을 봐도 그렇고, 전체 건축물 배치를 보아도 건물 전면이 남쪽을 향하는 南向式이다. 꽤 가파른 산기슭을 평지로, 그리고 계단식으로 다지는 식으로 주요 전각을 조성했다. 지금은 다소 어지러움을 주는 전각 중에서도 말할 것도 없이 그 준거요 중심이며 오야붕을 이루는 곳이 대웅보전大雄寶殿이니, 실제 경내로 통하는 大門격이자 누각식 건물인 대조루對潮樓는 대웅보전과 남북으로 일렬을 이룬다. 

 

대웅전 처마 끝에는 못생긴 여자들이 많다더라




한국 전통사찰 大雄寶殿 앞에서는 이처럼 누각식 건물로 大門을 삼는 일이 더러 있으니, 내 고향 경북 김천의 직지사도 그렇다. 이 누각 마루 밑으로 난 통로를 통해 참배객이나 관람객이 드나들지만, 이런 구조물이 없는 사찰도 허다하며, 나아가 樓라는 명칭이 무색하게도 앉은뱅이식을 맹글어 솥으로 치자면 발을 떼어버리고 몸체를 앉혀버리기도 한다.

최근에 내가 찾은 강원도 홍천 수타사의 흥회루興懷樓가 바로 이랬으니, 함께 이를 둘러본 고건축학자인 김동현 박사가 이르기를 “원래 이랬던 것이 아니라 마루 밑을 잘라서 없앤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준다”고 했다.

한데 저번 달인가, 이달 초인가에 찾은 충남 서산의 개심사라는 유서 깊은 사찰 또한 그러했으니, 大雄寶殿 전면 누각인 안양루安養樓 또한 앉은뱅이였다. 

여튼 전등사로 돌아가면, 대웅보전은 밑이 뻥 뚫린 대조루를 관통하면 전면에 正坐하거니와, 이날은 억수 같은 비에도 관람객이 적지 않아 나를 포함한 관람객 혹은 참배객이 이 대조루 마루바닥 밑에서 한동안 비가 때리는 대웅전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대웅보전은 전면 중앙에 ‘大雄寶殿’이란 현판을 달았으며, 보물인지라 그 전면에 문화재 안내판이 있으니 이날 답사에서 제법 재미있는 경험 두어 가지를 했으니,

하나는 대웅보전을 함께 관람하던 중년 남성 일행 중 한 명이 “대웅전大雄殿은 뭐고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뭔가? 다른가?”라는 물음을 동료에게 던졌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문화재 안내판을 읽던 한 무리의 중년 여성 중 한 명이 그에 적힌 ‘추녀’라는 말을 보고는 “전등사엔 못생긴 여자가 왜 이렇게 많아?”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폭소를 금치 못했다는 사실이다. 

 

렌즈를 후려친 빗방물



내가 나서서 한두 마디 거들고 싶었지만 꾹 참았으니, 하긴 大雄殿의 장중성을 더하고 나아가 4구체 漢詩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리고 현판 새기기의 편리성 등으로 大雄寶殿이라 쓰기도 한다는 점을 제대로 설명한 사람이 있기나 한가? 더불어 ‘추녀’가 ‘醜女’가 된다한들 무에 이상할쏜가? 

폭풍우가 치는 가운데서도 오직 개쌔끼 누렁이만은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대웅전 섬돌에 옹크리고는 옴짝도 하지 않았다. 스님이 불렀으나 미동도 하지 않더라. 일부 관람객이 이 개를 보고는 침을 흘리는 듯했으니 나도 그렇지 않았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대웅전과 향로전, 그리고 약사전으로 이어지는 대지에는 이런 모습으로 연꽃을 심었으니 이제 갓 피기 시작했거니와, 비바람을 잔뜩 맞은 모습은 비를 흠뻑 맞은 원피스 걸친 여성과 같았다.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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