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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이 죽었을 때 그 무덤 배치 양상이다.
이 무덤 예제禮制에 맞지 않는다.
머리 방향은 북쪽을 두어야 하지만 남쪽이다.
3년 뒤 그 마누라가 죽었다.

죽어서 이리 배치됐다.
이 역시 예제에 맞지 않는다.
첫째 부부가 모두 남쪽을 향해 머리를 두었다.
둘째 남녀 위치가 바뀌었다. 부부 위치는 바뀌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백제가 무식해서?
이런 이해가 의외로 많다.
하지만 백제는 저 당시 철저히 중국식 예제를 고수하려 했고 실제 철저히 고수했다.
심지어 3년상까지 맞추었다.
그런 그들이 유독 머리 방향과 남녀 방향만 반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비밀을 나는 저 상태가 실은 빈전 상태라 했다.
왜?
빈에 있을 때까지도 죽었으나 산 사람 취급했다.
저것이 바로 산 사람 위치, 산 사람 부부 위치다.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간 폭탄 선언이 김규동한테서 나왔다.
김규동은 본인도 모르는 총성을 울렸다.
*** previous atticle ***
[무령왕릉] 냉침대를 좋아한 왕과 왕비
https://historylibrary.net/entry/5-2
[무령왕릉] 냉침대를 좋아한 왕과 왕비
어제 새삼 김규동 관장한테 전화로 물어봤다."그렇담 말이오 익산 쌍릉에서도 웬간한 모습으로 관짝이 나왔는데 거긴 바닥 있습디까?내 기억이 확실치 않습니다.""있다마다요. 무령왕릉은 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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