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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계란 범벅으로 각인한 국무총리 서리 정원식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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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전 총리 별세…남북기본합의서 서명 주역·밀가루 봉변도(종합) | 연합뉴스

정원식 전 총리 별세…남북기본합의서 서명 주역·밀가루 봉변도(종합), 박경준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4-12 14:39)

www.yna.co.kr

 

저 양반이 파란만장한 이승에서의 삶을 끝냈다 해서, 우리 세대에 각인한 정원식은 바로 저라, 그리하여 문제의 사건 발생 시점을 우리 공장 DB에서 들여다 봤다. 이를 위해 나는 '정원식+밀가루'라는 두 키워드를 넣었다. 처음엔 '밀가리'라 넣었다가 이래선 기사 검색이 아니되더라. 

 

그를 증언하는 첫 타전은 이렇다. 작성자는 나중에 우리 공장 상무이사까지 하면서 각종 불공정 보도에 휘말린 김성수다. 

 

밀가루에 계란 범벅 정원식. 1991. 6. 3 

 

1991.06.03 19:55:01
鄭총리 외대서 학생들에 봉변

 

(서울=聯合) 鄭元植 국무총리서리가 3일저녁 외국어大 교육대학원에서 특강도중 강의실로 몰려온 운동권학생 2백여명이 항의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계란세례를 받고 피신중 학생들에 의해 운동장으로 끌려나가는등 봉변을 당했다.

 

鄭총리서리는 이날 하오 7시께 강의 도중 운동권 학생들이 복도에서 시위를 벌이자 강의를 중단, 7시20분께 강의실 밖으로 나오다 학생들의 계란세례를 받고 옆 강의실로 일단 피신했다.

 

鄭총리서리는 강의실 문을 잠근채 20여분간 학생들의 농성이 끝나기를 기다렸으나 일부 흥분한 학생들이 7시40분께 강의실문을 박차고 들어가 鄭총리서리에게 밀가루세례를 퍼부었다.


학생들은 이어 鄭총리서리의 양팔을 끼고 4층 강의실에서 운동장으로 끌어내 학생 5백여명이 뒤따르는 가운데 교문근처로 끌고갔다.(계속)

 

그것을 좀 보충한 기사가 그날 밤 늦게 나갔는데, 작성자는 나중에 YTN으로 건너갔다가 MB 정권에서는 청와대 홍보수석을 역임한 홍상표다. 

 

밀가루에 계란 범벅 정원식. 1991. 6. 3

 

1991.06.03 22:45:05
鄭총리 학생들에 집단폭행당해
外大서 구타당하고 발길로 채여

몸통·목 등에 타박상 찰과상 입어


(서울=聯合) 鄭元植국무총리서리가 3일저녁 외국어大 교육대학원에서 취임전부터 맡아온 대학원과정 강의를 진행하는 도중 운동권학생들에게 교문 앞까지 강제로 끌려나오면서 발로 차이는 등 집단구타를 당했다.


鄭총리서리는 이날 폭행으로 몸통, 목등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으나  입원가료를 받을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鄭총리서리는 이날 하오 6시30분부터 교육대학원생 50여명을 상대로  야간강좌로 교육학특강을 하던 도중 하오 7시쯤 대학원건물 4백18호 강의실 앞으로 몰려온 대학생 50여명이 "정원식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을 벌이자 8시에 종료예정이던 강의를 수강생들의 박수속에 서둘러 끝내고 하오 7시20분쯤 강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밀가루에 계란 범벅 정원식. 1991. 6. 3


이때 학생들이 양측 출입구를 차단한채 "물러가라" "끌어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鄭총리에게 달려들어 제지하는 경호관 4-5명과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일부 학생들이 계란세례를 퍼부어 鄭총리서리는 안면이 깨진 계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경호관들의 부축속에 떼밀리다시피 옆의 4백16호 강의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 채 일단 피신했다.


鄭총리서리는 학생들과 대치하면서 농성이 끝나기를 기다렸으나 학생 20여명은 "정원식이를 끌어내자"는 구호와 함께 7시 40분께 문을 밀치고 들어가  鄭총리서리를 끌어내기 시작했으며 일부 학생들은 창문을 넘어 들어가 가세했다.

 

경호관들과 일부 수강생, 교직원등 7-8명이 鄭총리서리를 막아섰으나 학생들에게 떼밀렸고 鄭총리서리는 학생 6-7명으로부터 뒷덜미와 멱살, 혁대끈을 잡힌채 계단을 통해 건물 로비까지 끌려나왔다.

 

이 과정에서 鄭총리서리는 "이게 무슨 짓들이냐. 왜들 이러는가"라며 학생들을 나무랐으나 일부 학생들은 주먹질과 발길질로 鄭총리를 폭행했고 경호관들이 제지했으나 학생들을 막지는 못했다.

 

鄭총리서리가 건물밖으로 끌려나오자 일부학생들이 밀가루 세례를 퍼부었으며 鄭총리서리는 안면이 계란과 밀가루로 범벅이 된채 학생 7-8명에 어깨, 멱살 등을 잡힌채 운동장을 가로 질러 1백여미터를 끌려 나왔다.

 

밀가루에 계란 범벅 정원식. 1991. 6. 3

 

鄭총리서리가 끌려 나오는 동안 학생 3백여명이 뒤따르며 "전교조 탄압주범 정원식을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으며 흥분한 학생 일부는 鄭총리에게 심한 발길질과 주먹질을 했다.

 

鄭총리서리는 교문앞에 이르러 경호관들이 학생들을 순간적으로 떼어 놓은 사이 마침 교문앞을 지나던 서울3파 5310호 개인택시를 잡아타고 경호관1명,  의전보좌관등과 함께 피신, 삼청동 공관으로 돌아왔다.

 

鄭총리서리는 이날 취임전부터 맡아온 교육학 강좌중 <학생생활지도  특강>과목의 마지막 강의를 위해 집무를 마치고 비서관, 경호관 7-8명과 함께 전철을 타고 하오 6시께 외국어대에 도착, 대학원2층 교육대학원장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뒤 강의를 시작했다.


이날 鄭총리서리가 교문앞으로 끌려나와 택시를 타고 떠나는 순간 전경 1개중대가 긴급히 현장에 도착했으며 교문밖으로 몰려나온 일부 학생들과 잠시 대치하기는 했으나 鄭총리가 떠나고 학생들이 교문안으로 철수해 충돌은 없었다.(끝)

 

그날 새벽 이를 종합한 기사가 나갔으니 아래다. 역시 작성자는 홍성표다. 당시 정치부 기자였다. 

 

밀가루에 계란 범벅 정원식. 1991. 6. 3

 

1991.06.04 00:32:20
鄭총리 학생들에 집단폭행당해(종합)
外大서 몰매맞고 발길에 마구 채여

강의실서 교문까지 1백M 끌려다녀
안면.목.몸통에 타박.찰과상 입어

(서울=聯合) 鄭元植국무총리서리가 3일저녁 외국어大 교육대학원에서 취임전부터 맡아온 대학원과정 강의를 진행하는 도중 운동권학생들에게 교문앞까지 강제로 끌려나오면서 발로 차이는등 심한 폭행를 당했다.

 

鄭총리서리는 이날 폭행으로 안면, 목, 몸통 등에 타박상과 찰과상등을 입었으나 의료진의 검진결과 입원가료를 받을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鄭총리서리는 이날 하오 6시30분부터 야간강좌로 교육대학원생 50여명을 상대로 교육학특강을 하던 도중 하오 7시쯤 대학원건물 4백18호 강의실 앞으로 몰려온 대학생 50여명이 "정원식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들어가자 8시에 종료예정이던 강의를 서둘러 끝내고 하오 7시20분께 강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때 학생들이 양측 출입구를 차단한 상태에서 "물러가라" "끌어내자"는등의 구호를 외치며 鄭총리에게 달려들어 제지하는 경호관 4-5명과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일부 학생들이 계란세례를 퍼부어 鄭총리서리는 안면이 깨진 계란으로 뒤범벅이  된채 경호관들의 부축속에 떼밀리다시피 인근 4백16호 강의실로 들어가 문을 잠근채 일단 피신했다.

 

밀가루에 계란 범벅 정원식. 1991. 6. 3 

 

鄭총리서리는 학생들과 대치하면서 농성이 끝나기를 기다렸으나 학생  20여명은 "정원식이를 끌어내자"는 구호와 함께 7시40분께 강의실 문을 밀치고 들어가 鄭총리서리를 끌어내기 시작했으며 일부 학생들은 창문을 넘어 들어가 가세했다.

 

경호관들과 일부 수강생, 교직원등 7-8명이 鄭총리를 막아섰으나 학생들에게 떼밀렸고 鄭총리서리는 학생 6-7명으로부터 뒷덜미와 멱살, 혁대끈을 잡힌채 이를  제기하려는 경호관들과 뒤엉킨 상태에서 실랑이를 벌이며 계단을 통해 건물  로비까지 끌려나왔다.

 

이 과정에서 鄭총리서리는 "이게 무슨 짓들이냐. 왜들 이러는가"라며 학생들을 나무랐으나 일부 학생들은 주먹질과 발길질로 鄭총리를 폭행했고 경호관들의 제지에도 불구, 鄭총리서리는 학생들의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鄭총리서리가 건물 밖으로 끌려나오자 일부 학생들이 밀가루를 퍼부었으며 鄭총리서리는 학생들에게 어깨, 멱살 등을 잡혀 운동장을 가로 질러 1백여미터를 끌려 나왔다.

 

鄭총리서리가 끌려 나오는 동안 학생 3백여명이 뒤따르며 "전교조 탄압주범  정원식을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으며 흥분한 일부 학생은 鄭총리에게 심한 발길질과 주먹질을 시도, 경호관들과 계속 실랑이를 벌였다.

 

1991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임 정원식 국무총리서리에 임명장 수여한다. 

 

鄭총리서리는 교문앞에 이르러 경호관들이 학생들을 순간적으로 떼어 놓은 사이 마침 교문앞을 지나던 서울3파 5310호 개인택시를 잡아타고 경호관1명, 의전보좌관 등과 함께 피신, 삼청동공관으로 돌아와 국군 서울지구병원 의사및  간호원으로부터 진찰과 치료를 받았다.

 

鄭총리서리는 이날 취임전부터 맡아온 교육학 강좌중 <학생생활지도  특강> 과목의 마지막 강의를 위해 집무를 마치고 비서관, 경호관등 7-8명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하오 6시께 외국어대에 도착, 대학원 2층 교육대학원장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강의를 시작했다.

 

이날 鄭총리서리가 교문앞으로 끌려나와 택시를 타고 떠나는 순간 전경 1개중대가 긴급히 현장에 도착했으며 교문밖으로 몰려나온 일부 학생들과 잠시 대치하기는 했으나 鄭총리가 떠나고 학생들이 교문안으로 철수해 충돌은 없었다.(끝)

 

정원식

 

이 사건은 여러 상흔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이른바 민주화운동 전반에 한동안 찬물을 끼얹은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어쩌면 당시 노태우 정권으로서는 기다린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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