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8일은 와우아파트가 와장창 붕괴한지 꼭 반세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번주 [순간포착]은 여러 대안이 있었지만, 이를 포함한 여러 개를 두고 어떤 것이 좋겠냐 담당기자가 문의를 해서, 와우아파트가 좋지 않겠냐 해서 이리 결정된 것이다.
이 와우아파트 붕괴는 근대 대한민국의 여러 문제를 응축한 대사건이었으니, 견주건대 세월호가 그런 현대의 대한민국 문제를 응축한 해상 사건이라면 그것은 육상의 그런 문제를 농축한 육지판 안전사고라 하겠다.
한데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 참사를 증언하는 우리 공장 자체 사진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다시피 지금의 연합뉴스는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한 언론통폐합 조치로 기존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이 억지로 한지붕 가족이 되면서 탄생한 연합통신이 모태다. 법적으로는 두 통신과 기타 군소 통신을 계승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기록 보관 정신이 전연 없을 때라, 관련 자료 자산은 거의 말살되고 말았으니, 두 통신사가 축적한 사진 또한 이미 망실되고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국가기록원 자료를 활용하기로 한 것인데, 저 기사에 첨부한 사진이 바로 국가기록원에 정식 행정정보 공개를 청구해 받은 사진이다.
덧붙이건대 국가기록원 DB 말이다. 왜 이 따위로 관리하는지 외부에서 어떤 사진이 있는지 검색만 하게 해 놓고 다운로드를 불가능하게 해 놨다는 점이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더구나 그 자산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한데도 어찌하여 저런 원시적인 시스템을 고수한단 말인가?
이 와우아파트 자리는 현재는 와우공원이다. 그 자리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지도를 참고하라.
지금은 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쪽팔리지만, 아마도 그 모양이 누운 소[臥牛] 같다 해서 이런 이름을 얻은 듯하다. 하긴 우리나라 산 치고 저런 철퍼덕 아닌 게 없는데, 그런 까닭에 와우산이라는 산 이름은 전국에 걸쳐 산재한다. 암튼 희한하게도 그 일대가 급격히 개발된 가운데서도 해발 101미터인 와우산은 지금도 어쩐지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그런 모양새다.
와우아파트는 이 일대에 들어선 5층짜리 아파트다. 이 아파트 건설에 그 유명한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 등장한다. 밀어부치기 토목 건축 지향에서는 이명박도 저리 가라 할 만한 그는 1968년 이래 불량건축물 정리를 위한다면서 판자촌 지구 40곳을 헐고는 그 자리에 이름도 거창한 '시민아파트'를 짓고는 영세민들을 입주하려 했다. 그 취지 보다시피 아주 좋다. 하긴 그러고 보면 와우아파트야 저런 비극으로 막을 내려서 그렇지, 요즘 기준으로 적극 의미 평가를 한다면 도시재생사업 아니겠는가?
이에 의해 판자촌 밀집지대인 와우산 일대에 5∼6층짜리 아파트 16동이 들어섰다. 문제는 그것이 다 부실공사에 급조공사였다는 점이었다. 개중 한 개 동인 1970년 4월 8일 아침 6시 30분쯤 폭삭 붕괴한 것이다. 아주 폭삭 말이다. 그것도 지은지 불과 4개월 만에 말이다.
인명피해는 참혹했다. 아파트 주민만 32명이 죽고 그 숫자만큼 다쳤으며, 그것이 언덕에서 붕괴하며 인근 개인주택을 덮쳐 1명이 죽고 3명이 크게 다쳤다.
그 참상들이야 말해서 뭣하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저런 참사에는 합동위령제가 열리기 마련이라, 그때도 사정이 같았는데, 역시 시대 배경이 달라 상주들이 광목천으로 만든 상복을 입은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유족석이라는 안내판에 앉은 유족 중에서도 맨 앞줄 저 중년 혹은 나이 지긋해 보이는 여인이 눈물을 훔친다.
가족을 잃은 우리네 엄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또 이런 참사는 정치쇼를 연출하는 장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 박정희 부인 육영수가 위문하는 모습이 포착하거니와, 저것이 연출임은 말할 나위가 없으니, 그가 떠 먹여주는 밥이 저 사람은 목구멍에 넘어가기나 했겠는가?
붕괴현장을 수습하는 장면인데 생각보다 철근이 아주 얇고 양도 아주 적다. 왜 붕괴했는지를 엿볼 만한 장면이다. 벽체도 지나치게 얇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이집트에서 요새 짓고 있는 아파트를 보는 듯하다.
사상자를 실어나르기 위한 구급차와 경찰차, 중장비가 범벅인데, 사람이 너무 많다.
이 사진을 봐도 벽체가 얼마나 얇은지 엿본다. 철근은 철사로 불러야 할 정도로 형편없다.
동기동창이 처참히 붕괴한 장면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같은 동 아파트 건물들이 묘한 인상을 준다. 아파트였을까 상자였을까? 어째 요새의 조립식 주택 같은 인상을 자꾸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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