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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불완전하다.
1988년 영남대박물관이 조사한 경산 조영동 E 2-1호분이다.
환두대도가 나온 걸로 보아 묻힌 사람은 남자로 본다.
축조연대는 오세기 후반으로 조사단이 봤다.
저 다리미가 칠성판 대용이라는 내 주장 수긍할지 모르겠지만 수긍해야 한다.
머리맡 다리미는 엎은 상태로 저 지점에 놓았다.
뭐 다리미로 머리카락 다렸나? (2016. 3. 22)
***
다리미를 위두熨斗라 한다.
그 모양이 북두칠성이라 해서 저리 부른다.
간단히 말해 다리미 자체가 북두칠성이다.
저것이 조선시대로 내려오면 등때기에 칠성판을 대는 전통으로 변모한다.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성신星神이다.
주검과 더불어 북두칠성을 상징화한 다리미를 넣은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고고학은 끊임없이 왜? 왜? 왜? 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팠더니 뭐가 나왔고 그 생김은 이러하며 그 유래 혹은 분포 혹은 변화양상은 이러하다는 말은 기술이며 그건 개돼지도 하지 않는 짓이다
#다리미 #위두熨斗 #북두칠성 #칠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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