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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전쟁 이후
링컨의 노예해방으로 일거에 해방되어 버린 흑인 노예들에게
백인들은 지금 처럼 일하면서 농장일을 해준다면,
수확의 절반씩 반타작 하는 소작농으로 대접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물론 알렉스 헤일리의 조상들은 이를 거부하고
자작농이 되기 위해 서부로 마차를 몰아 이주하지만-.
하고싶은 말이 뭔가 하면,
우리나라 역시 노비 사역이 중심이었던 시대가 막을 내릴 즈음에야
노비소유주와 노비들 사이에 병작반수의 소작제가 비로소 중심적 토지생산관계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비사역이 주류가 된 사회에서는 소작이 전개될 수 없다.
소작이 전개되지 않으면 자본가적 차지농도 나올 수 없다.
필자는 이렇게 노비사역이 막을 내리는 시대를 우리 역사에서 영-정조 시대로 보기 때문에,
영-정조 시대 이후나 되어야 지주-전호제가 전개되며
여기서 자본가적 차지농이 나온다고 해봐야, 19세기 중반이나 되어야 그 씨앗이 보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예제도가 종식되면,
그 자리에 병작반수의 소작제가 자라기 시작한다는 점.
비망기 삼아 적어둔다.
P.S.)
노비사역이 끝나는 시대를 무슨 근거로 영-정조 시대로 생각하느냐고 묻는 다면,
호적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해두겠다.
백마디 말보다 조선시대 호적을 한 번 들여다 보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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