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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사투리 쓴다 차별한 조선시대

by 한량 taeshik.kim 2020. 9. 1.

조선어학회 조선표준말모음

 

영조 7년 2월 24일 정시 전시 시권을 뽑는 자리의 대화이다.



영조가 이르기를,

“김한철(金漢喆)은 비록 서산(瑞山)에 살기는 해도 어찌 그를 시골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방 유생은 부(賦)나 표(表)가 서울 유생만 못한데 지금 책문에서 또 입격한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할 만하다.”

하니, 박문수가 아뢰기를,

“시골 유생의 문장에는 자연히 향음(鄕音)이 있으므로 표나 부에서 매번 낙방합
니다. 이번에는 전시에서 대책(對策)을 만나 또 모두 낙방했으나  시골 유생들 사이에 억울하다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사투리 쓰면 과거 합격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합격해도 어전에서 사투리 심하게 쓰면 시종신으로 쓰지도 않았다. 


시골 양반 서울에 몇 년 유학하며 과거공부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지방 명문가들이 대체로 사투리를 적게 쓰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경연에서 언해본 음으로 읽으면 영조는 어째 그리 읽느냐고 묻고, 언해를 경상도 학자들이 해서 경상도 사투리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고쳐 읽는 기사를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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