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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서리, 그리고 비 맞은 납매의 마지막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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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성탄절 엄동설한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는 납매 근황이 적이 궁금해서 다시 찾은날 이른 아침 눈 부비고 살피니 때마침 서리 천하라. 


이 서리를 뚫고서도 이름 모를 꽃은 이미 개화했으되, 이 모진 서리 이기고 살아남을지는 모르겠더라.


냉이는 누가 캐가진 아니해서 용케도 살아남아 뭉게구름 피운다.

저 마늘은 쫑다리 뽑아 된장 찍을 날 머지 않은 듯. 


납매 키우는 농가 들어서며 주인장 부르니 인기척이 없다. 그제 미리 다녀갔다는 지인은 흔들면 우수수 꽃잎 떨어진다며 조심하란다.

서리까지 머금었으니, 그에 더해 지난 서너달을 저 상태로 버텼으니 오죽하겠는가?


빛이 들지 않아 일단 물러나기로 하고 이튿날 아침 해가 들 시간을 맞추어 다시 찾는데 마침 간밤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오늘은 주인장 출타치 아니해 잠옷 바람으로 맞으면서 하는 말이 "아니 또 오셨어요?" 한다. 

나야 두 번째지만, 이곳을 자주 들러 납매 근황을 살피는 지인한테 왜 자꾸 남의 집으로 오냐 이런 불만이 없지는 않은 말투다. 




만개가 끝나고 종말로 갈 무렵 납매가 비를 맞으니 질겅질겅하는 물 먹은 스펀지 같다.
바닥엔 낙하 열반한 꽃술로 흥건하다. 

그래도 그 진한 향기는 여전해 온몸이 짙은 향수 뿌린 듯.
이 정도면 꽃공양 받은 부처라 하리라.


내년 기약하며 기념촬영해 둔다.

See you next winter!  

그러고선 발길 돌리는데 주인장이 한사코 문밖까지 따라나서며 커피 한 잔 하고 가란다. 

오잉? 이건 무슨 변화? 

같이간 일행 중 누가 꼰질렀다. 

"저 머리 허연 인간이 어디어디 기자요, 문화부장"이라고 꼰질렀다. 

이 집이 근자 몇 번 저 납매 개화 소식이 언론지상을 통해 전해지는 바람에 더러 유명세를 타는 모양이다. 납매 묘목장까지 경영하니, 이래저래 기뤠기라 하니 신경이 조금 쓰이신 모양이다. 

그나저나 납매는 다른 꽃이 피기 시작하면 지기 시작한다. 

혼자서 눈발 뚫고서 꽃을 피우다가 혼자서 사랑 독차지하고는 질투가 판을 칠 무렵이면 골방으로 물러난다. 

라이벌이 없으니 쟁투가 있겠는가?

오직 독야황황獨也黃黃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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