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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성저십리城底十里, 도성밖의 도성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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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도 서울의 범위는 한양 도성으로부터 10리(약 4.5Km)로 삼았다. 대체적인 범위는 알고 있었으나 그게 법에 정해져 있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다.

물론 이도 조선 전후기에 약간 차이가 있긴 하다. 일단 이 법 조문을 바탕으로 설정한 이후 조선 전후기 성저십리를 증손하면 정확한 지도가 완성될 것이다.




《대전통편(大典通編_》 〈형전(刑典) 금제(禁制)〉

○ 도성 10리 안【동쪽으로 대보동(大菩洞)·수유현(水踰峴)·우이천(牛耳川)·상벌리(上伐里)와 하벌리(下伐里)·장위(長位)·송계교(松溪橋)에서 중량포(中梁浦)까지 시내를 한계로 삼는다. ○ 남쪽으로 중량포(中梁浦)·전관교(箭串橋)·신촌(新村)·두모포(豆毛浦)에서 용산(龍山)까지의 시내와 강을 한계로 삼는다. ○ 북쪽으로 대보동(大菩洞)·보현봉(普賢峯)·저서현(猪噬峴)·아미산(峨嵋山)·옛 연서관(延曙館) 터·대조리(大棗里)에서 석관현(石串峴) 서남쪽에 물줄기가 합하는 곳까지의 산등성이를 한계로 삼는다. ○ 서쪽으로 석관현(石串峴)·시위동(時威洞)·사천도(沙川渡)·성산(城山)·망원정(望遠亭)에서 마포(麻浦)까지 시내와 강을 한계로 삼는다.】으로 들어와 무덤을 쓴 자는 도원릉수목률(盜園陵樹木律)로 논죄한다.【기한을 정하여 무덤을 파 이장하도록 한다. 〘증〙능침(陵寢)의 화소(火巢) 외안(外案)의 금표(禁標) 안에 불법으로 암장(暗葬)한 자는 사형(死刑)을 감하여 정배한다.】

○ 京城十里內【東自大菩洞·水踰峴·牛耳川·上下伐里·長位·松溪橋至中梁浦, 以川爲限。 ○ 南自中梁浦·箭串橋·新村·豆毛浦至龍山, 以川江爲限。 ○ 北自大菩洞·普賢峯·猪噬峴·峨嵋山·延曙舊館基·大棗里至石串峴西南合流處, 以山脊爲限。 ○ 西自石串峴·時威洞·沙川渡·城山·望遠亭至麻浦, 以川江爲限。】入葬者, 依盜園陵樹木律論。【勒限掘移。〘增〙 陵寢火巢外案禁標內偸葬者, 減死定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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