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칠정산을 편찬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세종은 ‘칠정산’의 움직임을 통해 조선의 자연환경에 맞는 날짜와 절기를 알려줌으로써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려 했다. 또한 일식‧월식과 같은 천문현상을 예측하며, 해와 달, 수성, 화성, 목성, 토성, 금성의 운행을 예측하며 천문현상에 대응하고자 했다. 특히, 중국 역법을 수용하여 사용하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처음으로 우리나라 독자적인 역법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자, 물론 이것도 맞겠지만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이제 세종실록 칠정산내외편 기록을 보자.
高麗 崔誠之, 從忠宣王, 在元得《授時曆法》,以還本國, 始遵用之。然術者且得其造曆之法, 其日月交食、五星分度等法, 則未之知也。世宗命鄭欽之、鄭招、鄭麟趾等, 推算悉究得其妙, 其所未盡究者, 加以睿斷始釋然矣。又得《太陰太陽通軌》於中朝, 其法小與此異, 稍加櫽括爲內篇。又得《回回曆法》,命李純之、金淡考校之, 乃知中原曆官有差謬者, 而更加潤正爲外篇。於是曆法可謂無遺恨矣。
요약하면: 고려시대에 원에서 "수시력"을 얻어 돌아왔는데 그 원리를 다 알지 못하였다. 세종이 신하들에게 명하여 그 원리의 이치를 구하게 하였고 그러고도 다 알지 못한 것은 임금이 직접 판단하여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로 끝맺는다. "이에 역법에 가히 남은 한이 이제 없어졌다고 할 것이다"
세종실록 칠정산내외편으로 얻은 실용적 이익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동기는 세종이 "이 역법의 원리가 미치도록 궁금해서" 였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그 원리가 궁금한 것이 "1차적 동기"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원리를 다 규명하고 나니 "남은 한이 이제 없어진" 것이다.
이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득은 그 결과물이지 세종이 칠정산을 편찬하는 일차적 동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과학의 기초가 무엇인가? 인간의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과학처럼 천박한 것은 없다.
세종은 군주이기 이전에 근대적 과학적 사고에 매우 근접해 있었던 사람이라고 본다. 비견한다면 다빈치 같은 존재 아니었을까.
(필자는 "한글"도 세종의 어린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애민정신의 발로도 있겠지만 일차적인 제작 동기는 세종의 호기심이었다고 본다.
음운학에 대한 세종의 호기심이 발전을 거듭하여 한글이라는 결과물을 낳은 것이다.
이 경우 한글은 그 최종 결과물이지 그 제작의 동기가 아니다.
세종이 음운학이 재미있어 파다 보니 한글이 나온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저 어린 백성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그래 한글을 만들자 해서 만든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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