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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송암 기정익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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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읍 우암선생 수명비를 보며 11대조 송암 기정익 선생을 생각했다.

우암의 문인으로 명재 윤증, 우헌 박상현과 벗으로 북이면 모현리 송암에서 셋이 사흘 밤낮 성리학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노소분당 이후 우정은 금이 갔고 토론을 정리한 문서는 문집에 수록되지 않고 필사본으로만 남았다.

노소분당 이후 소론이 강했던 영광, 장성. 나주 일대에 노론의 중심 서원으로 필암서원을 현 위치로 이건하고 스승에게 글씨를 받고 친구 김수항, 신익성 등을 원장으로 초빙하여 위상을 정립한 분이다. 그 제자로는 손재 박광일 등이 있다.

벗으로 말미암아 스승에게 사약이 내렸다는 소식을 장성 청암역에서 들었고, 어명을 앉아 기다리는 것은 불충이라며 우암은 길을 재촉해 정읍까지 올라가 사약을 받들었다.

청우(靑郵) 사건 또는 청역(靑驛) 사건은 청암역에서 사약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정읍에서 사약을 받들었던 일을 이른다.
만년 북이면 모현리 송암에 살기 전에는 하남정사와 동화면 구림리에 살았다.

동화면 구림리에 살 때 그 마을이 먹을 만드는 묵점이 있어서 호를 '점놈[店漢]'이라고 하셨다.

이곳 황룡면 아치실 입구에 유허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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