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상북도 영주 소백산 기슭을 정좌定座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애초 이름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한국 최초의 서원이면서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 해서 대서특필하거니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풍기군수를 역임한 주세붕周世鵬(1495~1554)과 이황李滉(1502~1571)이 그 개창주다.
즉, 풍기군수로 재임하는 주세붕이 처음 이 학당을 세울 때는 백운동이라 했다가, 나중에 같은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퇴계가 주동이 되어 소수紹修로 개칭한 것이다.
서원은 극한 예외가 없지는 아니하나, 그것이 위치하는 데를 따라서 이름을 짓는다. 김녕김씨 집성촌인 내 고향 경북 김천 대덕면 조룡만 해도, 백촌 김문기 할배를 배향한 서원을 이름하기를 섬계剡溪라 하니, 이 서원 앞을 지나는 시내 이름이 섬계인 데서 말미암음이다.
백운동서원은 그것이 정좌한 데를 백운동이라 부른 까닭에서 비롯한다. 글자 그대로는 흰 구름 동네다.
그렇다면 그것을 대체한 소수紹修란 무엇인가? 흔히 각종 사전 혹은 서원 안내를 보면 '이어서 닦는다'는 뜻으로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서 닦도록 한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의미로 임금이 편액을 하사했다 하면서 이를 유래로 설명하는 꼴을 본다.
과연 그러한가? 전국 모든 서원이 그 지명을 따라 이름을 붙인 데서 비켜나서 소수서원만큼은 저런 추상에서 이름이 비롯했는가?
사기다. 소수서원이라는 말이 저런 뜻을 담았음은 분명하나, 말 놀이한 데 지나지 아니해서 실은 그 직접 유래는 숙수宿水다.
숙수宿水가 소수紹修가 된 것이다.
이 백운동서원, 그러니깐 나중의 소수서원이 있던 곳은 본래 신라시대 이래 유서 깊은 사찰 숙수사宿水寺가 있던 곳이라, 서원은 그 사찰이 무슨 이유로 폐기되고서 들어선 것이다.
폐기된 시점은 분명치 아니한데, 마침 그 직전 조광조 일파가 정권을 농당하면서 유생들이 이단이라면서 사찰을 불지르고 중들을 몽둥이 찜질하던 시절이라, 나는 이런 문화대혁명에 숙수사가 소실되지 않았나 하는 강한 의심을 품는다.
이곳이 숙수사가 있던 곳임은 서원 경내 여러 곳에 남았으니, 가장 대표적인 기념물이 서원 경내 진입구에 만나는 당간지주가 그것이다.
숙수사 자리를 차지한 그 서원을 숙수서원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 음이 비슷한 글자를 가져다가 소수 운운하며 사기 친 소산이 바로 지금의 소수서원이다. 그 농간을 주도한 이는 퇴계다.
소수서원이 남긴 숙수사 흔적은 아래 글을 참조하라.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숙수사(宿水寺) 흔적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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