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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슬렁슬렁 자발 백수 유람기] (63) 모나리자는 허영의 표상

by taeshik.kim 202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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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하라 차갑게. 말탄 길손이여 삶을 그리고 죽음을. 예이츠는 말한다.



베르사유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옆자리에 파리를 여행 중이라는 한국인 일가족을 조우했으니 이런저런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원치 않게 엿듣게 되었다.

남자분 연배는 나랑 비슷하거나 좀 어린듯 했고 부인과 아마도 중학생인 듯한 따님과 셋이었다.

어제인지 루브르를 다녀오신듯 그와 관련한 일화가 오갔다.

너 그래도 모나리자 봤자나. 보니 어때 좋지?

한데 따님 반응은 영 심드렁했다. 모나리자엔 관심이 없는 듯 딴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실은 저 가족이 모나리자를 봤겠는가? 정확히 보기는 했지만 모나리자가 있는 현장을 맛본 것이요 실물은 하도 코딱지만한 데다 관람선까지 떨어진 지점에 설치하고 언제나 전시장은 인산인해라 그 분위기만 봤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현장을 따님한테 보여줬다는 걸로 부모님은 어깨가 으쓱 그리고 한껏 오른 상태였다.

그렇게 유명하다는 모나리자를 나도 보고 따님한테도 보여줬으니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모나리자란 그런 것이다. 죽기전에 한번은 그 현장을 봐야하는 그 무엇이다.

루브르는 오직 이 하나로 장사해먹는다. 수백만 점에 달한다는 그 무수한 인류사 컬렉션이 오직 모나리자 단 한 점을 위한 데코레이션인 곳, 그곳이 바로 루브르박물관이다.

그래서 모나리자는 인간 허영시장의 끝판왕이다.

나도 봤다 모나리자.

이 한 방으로 끝난다.

무엇을 봤냐는 오만기지 물음을 무력화하는 유산.

너도 봤으니 나도 봐야 하며. 나도 봤다는 그 하나로 내가 교양하는 그런 유산이 바로 모나리자다.

가자! 허영의 시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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