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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옆자리에 파리를 여행 중이라는 한국인 일가족을 조우했으니 이런저런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원치 않게 엿듣게 되었다.
남자분 연배는 나랑 비슷하거나 좀 어린듯 했고 부인과 아마도 중학생인 듯한 따님과 셋이었다.
어제인지 루브르를 다녀오신듯 그와 관련한 일화가 오갔다.
너 그래도 모나리자 봤자나. 보니 어때 좋지?
한데 따님 반응은 영 심드렁했다. 모나리자엔 관심이 없는 듯 딴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실은 저 가족이 모나리자를 봤겠는가? 정확히 보기는 했지만 모나리자가 있는 현장을 맛본 것이요 실물은 하도 코딱지만한 데다 관람선까지 떨어진 지점에 설치하고 언제나 전시장은 인산인해라 그 분위기만 봤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현장을 따님한테 보여줬다는 걸로 부모님은 어깨가 으쓱 그리고 한껏 오른 상태였다.
그렇게 유명하다는 모나리자를 나도 보고 따님한테도 보여줬으니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모나리자란 그런 것이다. 죽기전에 한번은 그 현장을 봐야하는 그 무엇이다.
루브르는 오직 이 하나로 장사해먹는다. 수백만 점에 달한다는 그 무수한 인류사 컬렉션이 오직 모나리자 단 한 점을 위한 데코레이션인 곳, 그곳이 바로 루브르박물관이다.
그래서 모나리자는 인간 허영시장의 끝판왕이다.
나도 봤다 모나리자.
이 한 방으로 끝난다.
무엇을 봤냐는 오만기지 물음을 무력화하는 유산.
너도 봤으니 나도 봐야 하며. 나도 봤다는 그 하나로 내가 교양하는 그런 유산이 바로 모나리자다.
가자! 허영의 시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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