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간 저녁 8시가 다 되어 간다. 내일 오전이면 비워야 하는 까닭에 한달간 찌든 때를 나름 벗긴다고는 벗겼다.
다만 하나 미안한 점은 밥솥으로 쓴 냄배가 좀 탔다는 사실이다. 그런 대로 세월의 깊이를 말해준다 하고 퉁치고 만다. 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면 대한의 건아라 하겠는가?
밥솥은 쓰지 않았고, 밥은 일일이 냄비에 가스불로 해 먹었다. 로마 체류한 날은 하루 두 끼를 이런 식으로 했다. 덕분에 수십년 전 자취생활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그때도 밥 하나는 잘 했다고 기억하거니와, 여기와서는 가속도가 붙었으니, 이런 식으로 밥해먹고 산다 했더니 마누라 왈, 이젠 내보내도 되겠다 하신다.
찌든 주방 때도 닦는다고 닦았다. 단백질 공급한다고 괴기도 가끔 사다가 부쳐 먹었으니, 방식이라 해 봐야 이렇다 할 만한 요리법이 있을 리 없어, 후라이판에 고기 올려 놓고 올리브 오일 살짝 뿌리고, 소금 뿌려 간 맞춘 일이 전부다. 그런대로 맛은 있어 이래서 공자님도 나이들수록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 했나 보다.
다음 손님이 언제 들이칠지 모르나,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 깨끗함 정도는 만들어 주고 떠나는 것이 예의 아니겠는가?
짐은 싼다고 쌌고, 내일 이륙까지 활동할 필수품만 내어 놓았으니, 오늘 휴관으로 실패한 오스티아를 다녀올 작정이다. 저녁 비행기이므로 그런 대로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지만, 여의치 않으면 중간에 도돌이하면 그만이니 걱정은 크게 안 한다.
이번 로마 한달살기는 누구라고 밝힐 수 없는 지인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하도 요소요소 필요한 것들을 잘 체크하고 빈틈없이 대비하기에 백수가 된 내가 우리 문화재 여행업 동업하자 제안을 해놓은 상태다. 삐끼는 내가 하고 기획은 당신이 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고국에서 추진하다가 다른 지인들한테 맡기고 온 일이 많다.
가자마자 그것들부터 챙겨야 하기에 괜히 돌아간다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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