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수학여행가면 어디든 기념품 파는 분이 많았다. 플라스틱 첨성대나 석굴암 부처님 열쇠고리, 천마도 손수건 같은 게 있었지만, 가장 흔했던 건 유적지 사진으로 만든 엽서였다. 사진엽서라고도 하고 그림엽서라고도 했는데, 대략 10장 단위 묶음으로 팔았었다.
짐작하겠지만 이것도 일제강점기 이래의 모습이다. Post card를 일본에서 '우편엽서'로 번역하고, 거기 사진이나 그림을 넣어 인쇄한 걸 그림 회 자를 넣어 '회엽서' 곧 그림엽서라고 불렀다.
이건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양이 전해지며,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하다. 이를 다룬 연구서나 자료집도 꽤 많으므로 내가 굳이 언급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요컨대 '그림엽서'야말로 제국 일본이 대내외에 보여주고 싶어한 '이미지'의 정수였다.
경주는 일제 때도 관광으로 명성을 날린 도시였다. 당연히 경주를 다룬 일제강점기 사진엽서, 그림엽서도 부지기수다. 그중 꽤나 흥미로운 그림엽서를 소개해본다.
신라시대 유적에 얽힌 전설을 누군가가 그림으로 그려 사진으로 찍고, 해설을 붙여 만든 엽서다. 말목 자른 김유신 이야기인데 어쩐지 유신랑의 갑옷이며 천관녀의 의복이 일본풍이다. 아니 화풍 자체가 일본 느낌이다. 작가가 아무래도 일본인이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로는 당연한 일이었겠지만서도.
스탬프가 하나 찍혔는데 첨성대, 분황사탑, 감은사지 삼층석탑(?) 같은, 경주의 상징은 다 들어갔다. 경주역에 이런 스탬프를 갖다놓고 찍게 두었던가보다. 날짜가 '14.4.4.'인데 대정 14년(1925)인지 소화 14년(1939)인지 잘 모르겠다. 설마 1914년이려나.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 선생의 회고록을 보면 60년대 중반까지도 경주의 유적에서 이러한 엽서가 팔렸다고 한다(그래서 홧김에 우리 풍속으로 바꾸어 그린 그림엽서를 만들어 보려다 잘 안되어 빚을 크게 지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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