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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신라사학회 창립선언문(2003년 3월 21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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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창립선언문은 내가 쓰고, 당시 초대회장 김창겸 선생이 손을 봤다. 


그 마지막 "신라사학회여! 너를 세상에 내보내나니, 그 탄생의 울음소리 고고하구나. 나아가 소리칠 지어다. 포효할 지어다. 그리고 신라를 위해 변명할 지어다. 스스로 주창하여라"는 내 원고에는 "신라사학회여! 너를 세상에 내보내나니, 나아가 소리칠 지어다. 포효할 지어다. 그리고 신라를 위해 변명할 지어다. 스스로 주창할지어다"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이 마지막 구절은 신채호가 어느 단행본인가 내면서 그에다가 붙인 글을 응용한 것인데, 신라를 경멸한 그의 구절에서 이걸 굳이 내가 가져와 신라를 웅변하는데 썼다.   


신라사학보 창간호 발간 논의. 마포 경인문화사에서



신라사학회를 창립하며


이 땅에 삶을 살았으며, 또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시대는 지금까지 신라를 한켠에서는 껴안고, 다른 한켠에서는 내쳐왔다. 우리는 그 중심에 근대 민족국가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무엇이 신라를 감싸 안고자 했는가? 신라를 그들만의 조상, 그들만의 전통, 그들만의 기억으로 전유하고자 하며, 그리하여 그것을 텍스트화함으로써 그러한 기억을 영속화하고자 한 무리와 시대가 그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이런 시대는 신라와 그 시대를 이룩한 신라인들이 오직 그들만을 위해 존재한 것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결국 신라와 신라인들은 오직 '우리'만을 위해 존재한 조상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 동남쪽 귀퉁이에서 출발해 마침내는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이룩한 신라와 신라인들은 그것을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자들과 그러한 자들이 활동하는 시대에서 그들 권력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정통이요 전통이며, 그들의 정체를 이룩한 근거요 기반이었다.


하지만 신라가 갖던 이러한 위상은 19세기 이래 한반도에 국민국가 추동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 하면서 돌변했다. 이들은 신라를 경멸하고, 나아가 김유신金庾信과 김춘추金春秋를 민족배반자라는 딱지를 부쳐 폄훼하였다. 935년 신라 멸망으로부터 무려 1,000여년이 지난 뒤에 한반도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시대적 요청이 신라에 대하여 이민족인 唐을 끌어들여 동족 국가와 동족의 민족을 멸한 반민족적 왕조라고 내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신라는 오직 영광과 번영만이 가득해야 할 찬란한 우리 민족사에서 그러한 영광과 번영에 오점과 치욕과 수치를 남긴 존재로 추락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 결과 어디에도 신라는 발 디딜 곳이 없어졌다. 신라 멸망 이후, 그들을 뒤이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그들 왕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기억이요, 기반이었던 신라는 이렇게 내셔널리즘의 된서리에 2,000여년전 건국 당시의 사로6촌斯盧六村으로 그 영역과 위상이 다시 현저히 쪼그라들고 말았다.


곳곳에서 얻어터져 그 스스로를 변명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저 신라는 겨우 화랑이라는 숨구멍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보국忠誠輔國하는 현좌賢佐요, 충신忠臣이요, 양장良將이요, 용졸勇卒로써 살 길을 마련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신라에 대한 이와 같은 무차별적인 공격은 물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20세기 민족의 분단 상황과 결합된 ‘신라 때리기’를 경계한다. 아울러 우리는 신라가 현재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해 존재한 조상이요 민족사의 정통성이라고 주장하는 흐름 또한 경계한다.


이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살다간 사람들과, 또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과, 또 그들의 각 시대에 신라는 과연 어떠한 존재였고, 오늘날 우리에게 신라는 무엇이며, 그들이 이룩한 역사와 문화는 또 어떠하며, 그들이 꿈꾼 사회는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


우리 신라사 연구자들은 처음이라 작지만 언젠가는 더욱 알차고 강한 힘을 발휘하리라는 바람을 품고서 신라사학회를 결성하고 창립한다.


신라사학회여! 너를 세상에 내보내나니, 그 탄생의 울음소리 고고하구나. 나아가 소리칠 지어다. 포효할 지어다. 그리고 신라를 위해 변명할 지어다. 스스로 주창하여라.


2003년 3월 21일


신라사학회 창립회원 일동


신라사학보 창간호 발간. 마포 경인문화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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