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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어떤 장관의 연출한 해외 데코레이션으로서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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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인가 그제 각중에 서재로 들이닥친 아들놈이 메모지 같은 걸 보면서 묻기를 "아부지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라는 책 있소?" 하기에 "있는데 왜?" 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 아들놈이 드뎌 이제 책을 가까이하기로 한 모양이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하고 나름 감격해 하는데, 하는 말이 그 책이 내가 있다 없다를 두고 내기판이 거실에서 벌어졌댄다. 각중에 무슨 펠로폰네소스? 하는 의뭉함과 더불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탄식이 일어났더랬다. 

그러다가 웬 펠로폰네소스 타령인가 하는 의문을 풀게 되었으니, 작금 권력 최상층에 속하며, 작금 최고 권력 최측근으로 통하는 작금 내각 구성원 어떤 장관이 연출한 의도하는 사진 때문이었음을 이내 알게 되었으니, 

 

 

바로 이 장면이 문제였다. 우리 공장에서 발행한 관련 사진을 보면 그 장관이라는 친구가 유럽에서 열리는 출입국·이민정책과 관련한 어떤 자리 참석을 위해 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면서 저런 모습이 포착되었다는 것이니, 순간 색깔만 검은색이었더래면, 또 자꾸 달린 가죽 껍데기만 있었더래면, 목사님 아닌가 했더랬다. 

저 장면이 작금 권력을 어찌 볼 것인가 하는 시각과 버무려져, 그와 그가 몸담은 권력을 향해 反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저걸 두고 또 볼썽 사나운 갖은 말을 동원해 비아냥하며 쏘다대기도 하니, 하긴 뭐 그런 시각에 따른다면야, 저와 같은 친구들이 뭘 하건 마음에 드는 게 있겠는가? 메주로 콩을 쑨다 해도, 그 일로 똥이랑 된장도 구분치 못한다 야유의 소재가 될 뿐이다. 

내가 저가 아니지만 저 장면 다분히 연출이다. 논란 중에 선 그가 출국하는 그 자리에 기자들이 나올 줄 몰랐다는 말은 있을 수 없고, 또 그의 출국 사실은 아마도 언론사에 미리 공지되거나 사실상 그랬을 것이로대, 기자들이 나타날 줄 아는 그가 저를 의식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정치는 연출이다. 연출은 목적을 담보한다. 

그렇다면 저 장면은 무엇을 노림한 것인가? 내가 그의 복심도 아니니 알 턱이 있겠는가 마는 꼽게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저 꼴도 눈꼴시려울 뿐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저 판본이라 나는 영어 번역본 아닌가 했는데 저런 걸 분석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 그네들에 의하면 천병희 선생 완역본에서 꺼풀을 떼어낸 것이라 한다.  

현 최고 권력자와 더불어 검사 시절 부침이 간단히 않았다는 저는 프로필을 보니 1973년 4월 9일 생이라, 바뀐 나이테 감정법에 의하면 여전히 40대이며 똑똑한 사람이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이니 저런 책을 데코레이션으로만 들고다니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장관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니, 아마 비즈니스 클라스 좌석에서 어느 정도는 실제 읽을 것이다. 혹 모른다. 진짜로 혹닉해서 읽을 줄 아는가? 저 모습은 실은 내 40대까지 그것이기도 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혔으니 말이다. 

그런 삶도 50줄에 들어서니 신통방통하게도 책은 수면제였다. 편 지 30분이 되지 아니해서 스스러 잠이 들고 마니, 요새 프로포폴로 셀렙들이 주가 한창이거니와, 하정우 유아인이 왜 프로포폴로 빠지는 알 수 없으니, 책 봐라! 하긴 아직 50대가 아니니, 약발은 좀 덜 할지 모르겠다.

저 책은 판본을 내가 확정할 수 없으나, 아무튼 Thoukudídēs Ho Polemos ton Peloponnesion Kai Athenaion라 하는데 Thoukudídēs야 말할 것도 없이 그 저자로 헤로도토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 역사학 쌍벽으로 일컫는 그 분이라, 흔히 둘을 견주면 사마천과 반고 딱 그것이다.

 

타키투스

 
사마천은 사고가 자유분방하기 짝이 없고, 서술은 신화와 팩트를 넘나드는 모습이 딱 사마씨 천이요, 반고는 원문 인용을 좋아하는데, 이는 연설문 전문 싣기를 좋아한 투키디데스 딱 그것이다.

보통 인용문을 전문으로 싣는 사람은 쪽수 늘캐기가 주특기인데 하긴 뭐 반고의 한서漢書가 그것이 다루는 범위에 견주어 졸라 분량이 긴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Ho Polemos ton Peloponnesion Kai Athenaion 란 무슨 개뼉다귀인가?

직역하면 The  war with the Peloponnesians and the Athenians 이라 곧 The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라 흔히 영역하는 펠로폰네소스전쟁사가 그것이다.

저것이 천병희 선생 번역본이라면, 또 그것이 아니라 해도 저 책은 그가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비행기 안에서 소화하기는 몹시도 까탈스럽다.

우리한테는 익숙하지 않은 지명과 인명으로 점철하며, 무엇보다 그네들끼리 관계를 머리에 넣기가 무척이나 곤흑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새벽녘 안개 자욱한 남한산성 숲길을 걷는 그런 기분이다.  

그렇다면 저 벽돌책을 왜 들고 다닐까? 본래 정치인이나 그런 성향이 짙은 사람들은 자고로 저런 책은 읽어둬야 기자님들한테 있어 보이는 법이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사진기자들한테 보일 때만 본인이 들고 기자들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비서가 들기 때문이지 뭐겠는가? 

그건 그렇고 우리네 사진기자님들 첨엔 저 책이 무슨 귀신이냐 쑥떡쑥떡했을 모습 선하며 그 모습 보며 저는 또 얼마나 관종임을 즐겼을까?

다시금 예수님 부활을 재방해야겠다. 못 박혀 가신 예수님 사흘만에 부활하셨는데 주변에 열두제자인지 하는 측근들만 보이고 기자들이 보이지 않아 짜증 내면서 하신 말

"기자들 왔어?

본래 기자란 그렇다. 기자가 마약이요 프로포폴이며 메타펨타민이다. 그 약물에 한 번 빠지면 다시는 헤어날 수 없다.

움직이는 동선마다 기자가 버글버글한 세상을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 똥값되어 집을 나섰는데도 기자 한 마리 안 보인다? 그처럼 공허한 일은 없다. 

셀라뷔 

 
***

 
영어본이 아니고 작년 연말에 돌아가신 그리스고전 번역가 천병희 선생이 옮긴 국역본 종이 커버를 벗긴 본체로 추정된다 합니다. (sns 지인 이욱신 선생 전언이다. 애초 이 글은 영어판이라는 전제를 두고 썼지만 내 성급한 판단이었다. 그가 소개한 판본을 지적한 어떤 분 글을 보니, 원서가 아님에도 꺼풀을 깜으로써 원서처럼 보이고자 했다고 하나, 또 그럴 의도가 설혹 있었는지 모르나, 그 꺼풀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알면, 좀 심한 비난이라 하겠다. 본인 소장본일까 빌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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