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5)
초여름에 끄적이다[初夏戲題]
[당(唐)] 서인(徐夤) / 김영문 選譯評
만물 기르는 훈풍이
새벽을 쓸자
시나브로 연꽃 피고
장미는 지네
초록빛 애벌레도
장자 꿈 배워
남쪽 정원 나비 되어
훨훨 나르네
長養薰風拂曉吹, 漸開荷芰落薔薇. 靑蟲也學莊周夢, 化作南園蛺蝶飛.
(2018.05.19.)
벌써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이어진다. 찬란했던 봄꽃은 간 곳이 없고 동네 울타리에 빨간 장미가 초여름을 단장하고 있다. 이제 곧 장미도 지고 곳곳 연못에는 어여쁜 연꽃이 만발할 터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환몽처럼 흘러간다.
우리의 현실은 또 다른 어떤 세상의 내가 꾸는 꿈이 아닐까? 당나라 심기제(沈旣濟)는 『침중기(枕中記)』에서 노생(盧生)이 겪었다는 한 가지 일화를 거론한다. 노생이 과거에 낙방하여 떠돌던 중 한단(邯鄲)의 한 여관에서 여옹(呂翁)이란 도사를 만난 이야기다. 물론 소설 형식을 빌린 허구다.
소설에서 노생이 자신의 불우한 신세를 한탄하자 여옹이 베개를 하나 꺼내주며 잠깐 눈이라도 붙이라고 한다. 노생은 꿈 속에서 베갯머리 틈으로 들어가 미모의 청하최씨(淸河崔氏) 부인과 혼인하고, 진사에 급제하여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린다. 그러나 깨어나보니 잠이 들 무렵 짓기 시작한 부뚜막의 기장밥도 아직 다 익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를 황량일몽(黃粱一夢) 또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이라 한다.
우리는 꿈의 꿈속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주(莊周)는 『장자』 「제물론(齊物論)」에서 또 다른 꿈 이야기를 한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면서 자신이 장주임을 모르다가, 문득 꿈을 깨고 나서 자신이 장주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그럼 장주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지금 나비가 장주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장주는 유한한 현실에서 정의한 경계를 허물고 절대자유를 꿈꿨다. 초록빛 배추벌레가 허물을 벗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소요유(逍遙遊)가 바로 그런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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