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상교리 고려 석실묘(驪州 上橋里 高麗 石室墓)
지정번호 : 경기도기념물 제198호
소재지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산46-1
고달사지가 위치한 고달 부락 뒷산에 위지한 이 고분은 상감청자 조각을 비롯한 몇 가지 발굴한 유물을 통해 고려 말기에 만들었다고 추정되며, 그 모양이 특이해 고려시대 묘지 연구에 기이한 사례를 제공한다.
발굴하기 전에는 현실玄室 위쪽 기단부는 완전히 흙에 묻힌 상태였고, 기단 2층과 석실石室 입구 부분에서는 돌만 노출된 상태였다고 한다.
발굴은 1983년 11월 ~ 12월 한양대박물관 발굴단이 실시했다.
그 결과 아래쪽 석실은 평면 원형이며 무덤길인 연도羨道가 달려있고, 위쪽은 방형方形인 2층 기단으로 밝혀져 그 구조상 특성을 살려 상방하원上方下圓 석실묘石室墓란 명칭이 붙었다.
지상 구조는 2층 제단祭壇(현지 안내판에는 재단이라 했는데 문맥으로 보아 제단의 오기인 듯하다) 모양이다. 기단 1층은 규모가 동서 442.0㎝, 남북이 280㎝, 높이는 46㎝로 장방형을 이루고, 기단 2층은 동서 322.0㎝, 남북 280.0㎝, 높이 50㎝다.
기단 하부 석실은 돌을 쌓아서 평면 원형의 현실과 평면 장방형 연도를 만들어, 평면은 열쇠구멍 모양을 이룬다.
원형인 현실 바닥은 직경 평균 163㎝이며, 현실벽은 높이 167~175㎝, 연도는 남북 약 220㎝, 너비 90㎝다.
현실 천장은 대형 판돌 2매로 덮었는데 남쪽 부분 돌은 너비 130㎝, 두께 25㎝ 정도 규모다. 특히 방향기단은 언뜻 불탑 기단을 연상케 하는데 바로 산 아래 고달사高達寺가 있었던 점에 비추어 직접 간접으로 불교 영향을 받은 묘제墓制로 보인다.
현지를 둘러본 느낌으로는 무덤일 가능성이 크지만, 무덤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른 기능도 생각해야 할 것으로 본다.
***
불교 석조미술사 전공 소재구 선생 견해를 소개한다.
고달사 원종대사의 가묘로 추정됩니다. 원종대사는 958년에 입적했지만 묘탑과 탑비는 19년 후 977년에 완공되므로 그 이전에 가묘를 만들어 매장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슷한 사례가 영월 사자산문 법흥사에도 석실묘와 승탑이 있고 아예 그 앞에 적멸보궁을 지어놨지요~ 석가의 진신시리를 그곳에 모셨다는 전설과 함께~ 그런데 그 옆에는 고승의 유골을 모신 작은 석관 파편이 지금도 남아 있지요~
정식으로 고승의 화장은 지광국사현묘탑부터이고 그 이전엔 가매장 후 다시 유골을 추려 석관에 묻는 매장법을 따랐을 것으로.. 그래서 승탑에 작은 석관이 함께 존재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국보4호는 원종대사탑이 맞아요. 탑비의 거북 발톱, 입아귀 지느러미 구름 무늬 등이 한 석공 작품이고, 저 아래 현 원종대사탑이라 명명된 보물 7호는 원종대사의 할아버지 격인 원감대사 즉 통일신라 하대에 고달선원을 처음 일으킨 분의 묘탑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승탑은 절대로 고려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격조높은 통일신라의 조형미가 있지요. 두 탑은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실상사의 증각대사탑과 수철화상탑도 마찬가지. 현재 주인공이 뒤바뀌어 있습니다.
경청할 만하다고 본다. 내 의문과 궤를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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