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내가 희미하게나마 계급이란 걸 어떻게 의식하기 시작했는지 잠깐 얘기한 적이 있거니와, 그에서 나는 벤또 또한 그런 의식을 일캐웠노라 한 적 있다.
그런 예고에 제법 깝죽대는 언론계 모 후배가 계란으로 떡칠한 쏘세지 동그랑땡을 언급했지만,벤또가 나에게 안겨준 굴욕감은 동그랑땡이 아닌 연근蓮根이었다.
고교 진학과 동시에 대덕 산골을 나와 김천 시내에 자취를 하게 된 나는 도시락도 내가 밥을 해서 싸다녀야 했지만 그것도 1학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어서는 아예 싸가지 않는 날이 많았으니,
그렇다고 내가 집이 풍족한가 하면 김천고등학교 구내매점에서 파는 라면 하나 사 먹을 돈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고학년이 될수록 점심을 굶는 날이 많았고
벤또를 싸가는 날도 변변한 반찬이 없어 실로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매양 김치만 싸다닐 수도 없었다.
한데 김천에서 제법 산다는 놈들 벤또 꼴을 보아하니 동그랑땡은 물론이고 연뿌리를 반찬으로 싸가지고 다니는 일이 제법 됐다.
내가 깡촌 출신이기는 해도 우리 동네엔 연이 없다. 그런 까닭에 연근이란 걸 알 턱이 없었고, 더구나 연근을 반찬으로 요리해서 먹는다는 것도 그 벤또를 만나기 전에는 도통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함에도 내가 보니 어떤 놈은 연근을 반찬으로 싸가지고 와서 벤또를 까먹는 게 아닌가?
고백하거니와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연근을 먹어본 적이 없다.
다만, 그 연근이 그리도 맛있어 보였다.
구멍이 송송 뚫리고 볶아 놓았는지 삶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간 검은 기가 돌고 기름칠 잔뜩한 그 연근이 그리도 먹고 싶었다.
그러니 나에게 혹여 지금 저 가슴 저변에서 자리잡고 있을 이른바 가진자들에 대한 분노와 파괴의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연뿌리에서 비롯될지니라.
한데 이후 내가 대학 진학과 더불어 서울생활을 하면서 마침내 연근을 맛보게 되었으니, 막상 맛본 연근은
맛대가리가 더럽게 없더라. (2011.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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