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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영암 내동리 삼국시대 무덤서 금동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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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 내동리 쌍무덤서 마한시대 금동관 출토 | 연합뉴스

전남 영암 내동리 쌍무덤서 마한시대 금동관 출토, 조근영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20-04-21 13:37)

www.yna.co.kr

 

먼저 전제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약보고서가 작성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보도자료가 배포되었기에 발굴 전반에 대한 정보를 내가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다. 

 

덧붙여 작년에 이은 연차발굴이라, 먼저 작년 발굴성과를 봐야 하지만, 나는 아직 이를 검토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무덤 전반의 양상과 작년 조사성과를 알지 못하므로, 이 부분에 대한 보강이 있어야 한다. 작년 조사성과를 정리한 약보고서를 입수할 예정이므로 그것을 토대로 나중에 별도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조사 중인 곳이 1호분, 그 아래 뽕긋이 2호분이다. 전면 기준 왼편 2개 봉분은 삼국시대 흔적이 아니란다. 

 

조사단장과 현장을 다녀온 동신대 이정호 교수 설명을 버무려 내가 이해한 현재까지 양상을 러프하게 정리한다. 

 

보도자료에서는 쌍분이라 설명했지만,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황남대총을 필두로 하는 경주지역 이른바 표형분과는 양상이 전연 달라, 연접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두 고분이 별도 연결 봉토 없이 각기 다른 봉분을 형성한다는 점이어니와, 이를 각각 1호분과 2호분으로 명명했다 하거니와, 현재 조사중인 것은 1호분이다. 

 

금동관, 복원공사 하면서 두들겨 깨먹고 이만치 남았다. 

 

둘의 상대적인 위치는 동-서 방향에 가깝다는데, 지금 조사 중인 1호분은 서쪽에 위치한다. 

 

두 봉분 모두 80~90년대 무분별한 복원 공사로 상당한 피해를 봤으니, 조사직전까지 두 봉분은 뽕긋뽕긋 엠보씽 불륨 자랑하는 원형 봉토분이지만, 원래는 이렇지 아니했을 것으로 본다. 이걸 마구잡이로 포크레인으로 헤집어 저리 만드는 과정에서 극심한 피해를 봤다. 그 피해 양상은 다시 얘기하겠다. 

 

두 금동관 비교

 

이 지역 삼국시대 봉분이 거개 그렇듯이 이 내동리 고분군 1호분 역시 아니나 다를까 벌집 모양이라, 봉분 하나에다가 여러 번, 여러 군데 구멍을 뽕뽕 뚫어 무덤을 썼다. 현재까지 확인한 매장시설 양상은 구조로 보아, 조사단장 전언에 의하면 석곽과 옹관과 석실이 각각 2기라 한다. 

 

작년에 석곽 2기와 석실 1기를 조사했으며, 이번에 금동관 파편을 출토한 곳은 1호 석실이다. 

 

금동관 출토지점. 본래 매장한 위치가 아니다. 

 

금동관은 1호 석실 덮개돌을 해체하자마자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출토 지점은 이렇다. 

 

도대체 이게 가능하기나 할 법한가? 도굴에 따른 훼손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현재로서는 복원 공사 과정에서 파헤친 어처구니 없는 짓의 결과로 본다. 개판됐다!!!!

 

코로나19 엑스커베이션 설명회

 

따라서 금동관이 제대로 복원될런지는 모르겠다. 보도자료에도 지적했듯이, 이정호 교수 말을 빌리면 이 금동관은 나주신촌리 출토 금동관과 일란성 쌍둥이다. 같은 공인이 제작한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1호 석실인데, 본래 이랬겠는가? 복원하며 다 깨먹어 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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