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조를 개창한 태조 왕건은 삼한을 일통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협박과 더불어 결혼을 고리로 지역 토호들을 포섭했으니,
이 과정에서 무수한 여인을 후실로 맞아들이게 되거니와, 개중 한 명이 훗날 죽은 뒤에 신정왕태후神靜王太后라는 이름을 얻은 황보씨皇甫氏다.
고려사 권 제88 열전 제1 후비后妃 전에 의하면 그는 지금의 황해도에 위치하는 황주黃州라는 고을 사람으로 훗날 고려 왕조 개창 이후 태위太尉라는 벼슬에다가 삼중대신三重大匡이라는 직책 혹은 직급으로 승진하고 죽어서는 충의공忠義公이라는 시호를 받은 황보제공皇甫悌恭이라는 사람 딸이다.
왕건은 남는 장사를 한 사람이라, 철저히 주고받기를 했으니, 황보제공이 정확히 저 결합 무렵에 어느 정도 위상을 지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떼부자였을 것이다. 왜?
통일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니, 이 뒷배를 봐준 사람 중 하나가 황보제공이었을 테니깐 말이다.
왕건이 밑지는 여자 장사는 딱 하나 했는데, 그가 질외사정 피임 스캔들 주인공 나주 장화왕후 오씨였다. 이 오씨는 집안이 변변찮아 왕건이 얻은 것은 딱 하나였으니, 그가 죽은 뒤 보위를 이은 혜종 왕무王武가 바로 장화왕후 소생이었다.
당시 왕건은 조강지처가 있었으니, 이 자리는 언터처블 넘버원이라, 다만 이 조강지처는 첩실들한테는 천만 다행으로 아들을 두지 못해, 아들을 낳은 후궁들끼리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벌였으니,
아들이 없는 조강지처? 이건 첩실들한테는 동등한 후계권 싸움을 보장하는 축복이었다.
황보씨는 후궁이요 첩인 까닭에 궁에 들어가자마자 명복궁대부인明福宮大夫人으로 책봉되었다.
대부인은 후궁 직급 중 하나로서 직급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명복궁明福宮은 무엇인가?
그가 처음 들어가 산 건물채 이름이다. 뭐 이름이 궁이라 붙으니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궁궐 안 조그만 안채 하나 던져주고 거기다가 명복궁이라는 명패를 달았을 뿐이다. 그러니 황보씨는 이 명복궁의 주인인 명복궁주明福宮主였다.
그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죽은 시점은 성종成宗 2년, 983년 7월이라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나온다.
왕건이 943년에 사망했으니, 거기서 다시 정확히 40년을 더 살다 죽은 것으로 보아 왕건이 죽어 과부가 되었을 때도 한창 들끓는 청춘이었거나 중년에 갓 접어드는 불타는 나이였음을 짐작한다.
황보씨는 자식으로 훗날 그 자손이 왕 혹은 왕비가 되는 바람에 대종戴宗이라는 사후 이름을 얻게 되는 왕욱王旭이라는 아들과
나중에 남편 잘 만나고 아들 잘 만나 출세하는 바람에 대목왕후大穆王后라는 존호 혹은 시호를 얻게 되는 딸이 있다.
더 자식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고려사에서는 이 1남1녀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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