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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외국열전 첫머리의 한반도 국가

by 초야잠필 2023.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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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사를 보면, 

외국에 대한 기술이 외국이건 (송사, 금사, 명사), 외이이건 (원사), 속국이건 간에 (청사고)

항상 한반도 국가를 거의 가장 첫머리에 가져다 두는데 (백프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도 대개 두 번째에는 두었다.)

이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수식하는데 중국을 중심한 질서에 순응하는 한반도 국가란 반드시 필요한 무대장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국이지만 중국의 세계관을 인정하는 주변국가".

이것이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 국가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한반도 국가가 중국의 세계관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중국이 원하는 그 세계관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리할 정도로 이를 관철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중국은 한국에 내정간섭에 가까울 정도의 여러 요구를 집요하게 할 텐데 이런 요구는 다른 국가에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결국 수천년간 맺어온 한국과 중국의 "특수관계"가 제국으로서의 중국에 반드시 필요한 무대장치라는 인식이 그쪽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보는 시각은 이처럼 단대의 상황에 규정되지 않고 수천년의 역사의 무게의 영향을 받는다. 

10세기 베트남이 독립한 후에도 중국이 틈만 나면 쳐들어갔던 이유는 베트남이 "중국땅"이라는 역사적 인식 때문이었다.

이 인식이 완전히 불식되기에는 1000년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지난 천년간 중국의 정사에는 외국에 대한 기술에서 한반도 국가를 항상 가장 앞에 세워 놓았다. 중화적 질서에 순응하는 외국으로서 역사가 길고 적당한 크기의 한반도 국가는 중국에게 꼭 필요했던 무대장치였던 셈이다. 중국이 한반도 국가를 보는 시각은 이처럼 스스로의 "세계관"의 존립에 필수불가결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이 그런 세계관을 고수하는 한 무대장치로서 한반도 국가의 순응은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다. 청대에 그려진 "만국래조도"에도 조선의 사신은 가장 앞쪽에 있다.

 
*** Editor's Note ***


필자가 말하는 외이관外夷觀은 동아시아 전통하는 천문우주관에서 비롯한 측면이 많다.

서구문명에서 비롯하는 방위관념은 동서남북이지만, 동아시아는 순서가 동남서북이라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순환한다고 본다.

이것이 또 훗날 전국시대 말기 이후에는 추연에서 비롯하는 종시오덕설終始五德說 영향으로 음양오행과 결합해 항상 계절로는 봄이요 색깔로는 靑을 배정한 동쪽을 출발선으로 삼는다.

이것이 외이관으로도 발전해 동이 남만 북적이니 하는 외신外臣을 배정하는 일로 발전한다.

동이가 중요한 이유는 위선은 그것이 단순히 저 천문우주관 그에서 비롯하는 지리관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시작이라는 관념이 일단 자리잡히고서는 언제나 그곳이 그네들 천문지리관의 실현여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저 관념을 토대하는 질서가 구축하는 세상이 바로 중화제국이다.

이 중화제국은 어느 한 군데서도 균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그 바로미터인 동쪽이 무너짐은 제국 질서 전체가 헝클어진다는 뜻이다.

왜 당이 백제와 고구려를 정벌하고는 신라까지 집어삼키려 했는가?

언제나 동쪽이 불안했고 이참에 그 싹을 잘라버림으로써 아예 근심 불안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은 조공책봉이라는 허울로 중국적 질서가 관통하는 세상을 그렸지만 그건 환상에 지나지 않았으니

중화제국은 실은 불안과 근심의 응축에 지나지 않았다.

20세기 이래 그 자리를 대체한 미국은 지구촌을 대상으로, 아니 우주까지 지배하는 질서재편을 기도하지만 장담하건대 그런 날은 올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

그건 중국의 실패가 징험하며 실제 미제국주의가 실현하는 양상을 봐도 중국의 그것을 답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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